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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

우편배달부의 봄에 쓰는 엽서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박목월의 시 <4월의 노래>를 성악가 오현명의 노래로 듣는다.


캠퍼스에서 만나는 목련 꽃은 나를 향해 반가이 웃고, 곧 터질 것 같은 벚꽃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런 날은 그리운 사람에게 엽서를 띄우고 싶다.



교양관 리틀 포레스트에 '우체통'을 들였다.


자율전공학부 70명 학생들이 한 학기동안 '마니또(비밀친구)'를 하고 있는 중인데 이번 주 미션이 마니또에게 편지쓰기다. 자신의 비밀친구에게 편지나 엽서, 혹은 쪽지를 써서 이 우체통에 넣으면 충실한 배달부 A(김동진 신부)와 B(김성래 신부)가 배달을 책임진다.


대학에 들어와 만난 마니또(대부분은 이성)에게 어떤 편지를 보낼까, 아마 손이 오글거리고 마음이 콩닥거리는 일이지 싶다. 그런 마음, 떨리는 젊음이 부럽다.




이태리 작은 섬의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어느날 한눈에 반한 베아트리체를 꼬시기 위해 시를 읽기 시작한다. 메타포(은유)가 무엇인지 몰라 정치적 박해를 피해 망명 온 시인 네루다를 찾아가 '은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네루다는 말한다.


"은유란 뭐랄까, 뭔가를 말하기 위해 다른 것에 비유를 드는거야. '하늘이 운다'면 그게 무슨 뜻이지?"

마리오가 대답한다. "비가 오는 거죠."

네루다가 웃으며 말한다."맞았어, 그게 은유야."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오는 은유로 시를 지어 그의 뮤즈 베아트리체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가 네루다를 찾아와 마리오가 자신의 딸을 만나지 못하게 해 달라면서 말한다.


"네루다씨, (그 놈이) 메타포로 제 딸을 용광로보다 더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니까요! 제 딸이 말하길, (그 놈이) 제 딸에게 미소가 얼굴에 나비처럼 번진다고, 웃음이 한 떨기 장미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홀연 일어나는 은빛 파도라고도 그랬다네요."


어느날 불쑥 찾아온 시처럼, 봄도 그렇게 왔다.


우편배달부 김 신부도 더듬더듬 메타포를 연습한다.


대학생들은 곧 빵하고 터질 벚꽃이고, 때를 기다리는 봄의 교향악단은 노란 축포를 쏘는 개나리와 수줍게 박수치는 진달래, 그리고 화려하게 노래하는 목련이다.


봄에는 모두 시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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