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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의 하양 무학로 교회

살아있는 건축물 이야기

나는 건축가 승효상 씨와 인연이 깊다. 군위본당에서 일할 때 본당 성지순례로 군위에서 가까운 성지를 찾던 중 우연히 신석복 순교자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놀라운 건축물이 있는데 이제민 신부가 승효상 건축가에게 부탁해 낙동강 강변에 녹아드는 소금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과 어울리는 '신석복 마르코 기념성당'을 언덕 위에 지은 것이다. 전통적 성지와는 다른 밀양 '명례성지'에서 군위본당 신자들은 신선한 은혜를 체험했었다. 명례성지는 승효상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났다.


신석복 마르코 기념성당 @google.com


군위 부계에 있는 '사유원'을 방문했었다. 사유원에는 승효상이 설계한 건축물이 곳곳에 자연과 어우러져 있었다. 조망이 가장 좋은 곳에 비움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현암, 삶과 죽음을 동시에 명상할 수 있는 명정, 깊은 생각을 담은 연못인 사담 등에서 승효상만의 독창적인 건축의 생명을 느낄 수 있었다. 조만간 정식 오픈을 앞둔 부계 사유원은 고요한 사색의 공간으로 걸으면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진정한 사유의 정원, 한국의 대표 수목원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명정 @google.com


그리고 놀랍게도 하양에서 다시 승효상을 만났다. 그는 이 조그마한 읍에 15평 '하양 무학로 교회'를 세웠다. 하양 무학로 교회의 조원경 목사는 개척교회 30주년을 기념해 새 성전을 짓고 싶어 오랜 인연이 있었던 승효상 씨에게 '7천만원으로 교회를 새로 지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수십억원이 드는 교회를 7천만원으로 어떻게 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승효상 씨는 '네, 됩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양 무학로 교회는 온전히 새로 태어났다. 하양 무학로 교회에 들어서면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크고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는 볼 수 없고 하늘을 이고 있는 타우(T) 십자가와 조그마한 철제 십자가 뿐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더욱 놀라게 된다. 50여명이면 가득 찰 작은 교회 규모 뿐만이 아니다. 설교대는 신자들과 같은 높이의 바닥에 놓여 있고 목사님이 앉는 의자는 신자들 의자보다 작고 불편하다. 신을 찾아오는 인간이 편함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신앙의 본질을 잃은 것이 아닌가 묻게 한다. 대형교회가 화려하고 큰 콘서트 홀 같은 교회를 짓는 시대에 하양 무학로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두터운 벽돌은 크기보다는 깊이, 양보다는 질, 형식보다는 본질에 충실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자연적으로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은 충분히 밝고, 교회는 작아 마이크 하나 없이도 하느님의 말씀은 울려 퍼질 것이다. 생(生) 목소리로 부르는 찬미가의 절실함은 신자들을 거룩함에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 줄 것이다.

 


천국 가는 좁은 계단으로 교회 옥상을 오르면 안과 밖이 없는 기도 공간을 만난다. 하늘을 지붕 삼아 기도할 수 있는 거룩한 공간이 있다. 하늘이 십자가 모양으로 내려와 기도하는 이의 어깨에 살포시 앉는다. 오직 벽돌로 만들어낸 야외 기도 공간 뿐만 아니라 교회 마당의 야외 제대 역시 참다운 예배란 안과 밖, 성과 속,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승효상이 만든 교회는 단순함, 절제와 비움을 통해 교회의 본질을 계속 성찰하도록 묻는다.



교회 사무실로 쓰는 한옥과 교회 건물은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오래도록 쉬고 싶은 곳이다. 교회 입구에 돌이 깔린 수반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처럼 언젠가 신을 찾아 나선 이가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던 때의 거룩한 세례수가 떠오른다.  



누구에게도 위압적으로 보이지 않는 교회는 동네와 잘 어우러져 있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놀이터이자 쉼터 같다. 그 마당에 우뚝 선 느티나무는 은해사 주지 스님이 보시한 것이다. '조 목사님과 아름다운 인연 영원히 이어 주십시오.'라는 표지석에는 교리와 차이를 넘어선 종교의 본질, 믿음 안에서 하나 되고픈 모든 인간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렇게 하양 무학로 교회는 작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하양(河陽)은 우리말로 물볕 혹은 물빛이라 한다. 금호강 옆 물이 조용히 빛나는 이곳에 작게, 하지만 단단하게 서 있는 하양로 무학로 교회를 보며 건축물을 통해 신과 인간, 신앙과 삶을 이야기하는 승효상 씨를 다시 만난다. 좋은 인연이란 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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