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부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비 내리는 오후

비가 오래 내리는 날은 쉽지 않다.


가만히 방에 앉아 있으면 온갖 생각이 습한 공기처럼 달라 붙는다. 나도 어쩔 수 없었던 일들, 미운 사람, 상처받은 일들은 '이때다!'하며 방안에 갇힌 이를 마구 들볶는다. 코너에 몰려 린치를 오래 당하고 있으면 왜 맞는가 하는 점보다는 이런 상황을 만든 비가 미워진다. 비 때문이다. 내가 계속 당하는 것은.


왜 내게 상처준 사람, 미운 사람은 자꾸 떠오르는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맛있는 것을 먹고 쉬기에도 아까운 시간에 씁쓸한 맛 밖에 남기지 않는 얼굴은 왜 계속 떠올라 비가 오면 뼛속 깊이 쑤시는 관절염처럼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는가. 그래서 비가 싫다.


비가 오면 가만히 있기 힘든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느냐만은 견디는 것은 전적으로 혼자 몫이다. 어쩌면 이것은 인생수업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다들 쉬는 일요일 오후, 내리는 빗속에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자신을 들여다 보고 견디는 일, 잃어버린 감동과 흥미를 상기하는 것, 그저 밋밋하고 심심한 것을 어떻게 버텨내는지 시험을 치고 있는 느낌이다. 우천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은 오직 밍기적 뿐이다.'


그래서 빈둥빈둥 거린다. 밥 먹고 잠시 일을 하고, 다시 밥 먹고 졸다가 운동하고, 다시 밥을 기다린다. 하루 세끼 챙겨 먹는 '삼식이'라서 슬픈 것이 아니라 하루 세끼나 먹는 삼식이면서도 밥값을 못하는 것이 슬프다. 비 때문이다.(가성비도 싫고 가수 비도 싫고 계속 내리는 비도 싫다.)


비는 왜 오는가? 


세차라도 해야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내가 나를 슬프게 할 일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