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부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꼴찌를 응원해!

우주인 연구 2

첫 학기에 처음으로 가르치고 있는 첫 반이 간호학과 학생 63명이다. 이 학생들은 출석 100%, 과제 제출 및 과제 만점 98%로 똑똑한데 적극적이기도 해서 대답도 잘하고 예의까지 바른 완벽한 학생들이다. 다른 신부님들이 부러워하는 학생들이다.


완벽한 학생들에게 중간고사는 충격이었다. 시험지를 받아든 그 얼굴에서 8주 동안 보았던 자신만만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시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신부와 무엇이 공부해야 할 중요한 것인지 모르는 학생들이 만났으니 결과는 뻔했다. 시험을 치고 나서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귀가 엄청 간지러웠다. 시험 다음 주, 진지하게 간호학과 학생들에게 한마디 했다. "다들 시험을 상당히 못 쳤습니다." 모두가 어이가 없었는지 크게 웃었다. 


며칠 뒤 우연히 간호대 학장 수녀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수십년을 간호대에서 가르치며 간호사를 양성해 온 수녀님은 중간고사 이야기를 듣더니 학생이 꼴찌해도 간호사가 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 같은 마음을 가진 간호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 간호대 학생들이 술먹고 다음날 수업도 째고 과제도 가끔은 안 내고 이상한 질문도 하는 대학생, 꼴찌라도 기 죽지 않는 대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히려 늘 1등하는 대학생보다 그들이 더 좋을 것 같다. 사실 1등만 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기 능력만 믿고, 남의 처지를 모르고, 실패에서 오는 고통과 자괴감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이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코 10,31).


요즘은 프로야구 볼 맛이 난다. 삼성이 1등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 5년이나 바닥을 맴돌았으니 이제는 1등을 할 때가 되었다. 꼴찌가 첫째가 되니 기쁘다. 


그런데 꼴찌하고 있는 롯데가 왠지 안쓰럽다. 야구인생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이대호가 불쌍하다. 이제 조용히 롯데를 응원해야겠다. 난 늘 꼴찌를 응원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비 내리는 오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