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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하라!

마지막 수업

오늘은 <가톨릭 사상> 한 학기 마지막 수업 시간이다. 첫 수업에서 '공부란 엑스터시(Ecstasy)다.'하고 말했다. 엑스터시란 '황홀감'으로 진정한 황홀감이란 자아도취가 아니라 자기를 벗어나는 것, 공부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변화를 통해 그 세계 안에 녹아드는 자신을 발견하는 황홀감이라고 말했다.


이제 공부의 종점에 다다랐다. 그 종점이란 '카타르시스(Catharsis)'다. 오랜 기간에 걸친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 온갖 비극과 희극의 일상, 온갖 죄와 기쁨을 통해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짧게는 한 학기에서 길게는 인생 전체에 걸쳐 그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이 모든 결함과 잘못을 드러낸 뒤, 서로의 죄를 알고 선선히 용서받고 흘리는 눈물과 웃음의 연극의 마지막 장면과도 같은 것이다. 가톨릭 사상 강의는 엑스터시에서 카타르시스로 가는 여정이다.


우주인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고 싶다. <만인의 인문학>을 쓴 도정일 작가는 '가슴에 이는 파도소리'에서 이야기한다. 1세기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에는 질투의 여신이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가슴이 말라붙어 널빤지 같고, 얼굴은 헤쓱하고, 독을 품기 위해 늘 뱀고기만 먹는다. 웃지 않지만 가끔 시꺼먼 이빨을 드러내고 웃기도 한다. 남이 실패하여 비참에 빠졌을 때. 


어느날 아테네 상공을 지나가던 질투의 여신은 눈물을 흘린다. 아테네 시가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그 도시의 행복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행복은 그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우리나라 사람은 질투의 여신이 밥통이나 십이지장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한다. 타인의 행복이 가져다 주는 아픔은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고통이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한 인간 생존의 필연성이며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감동'은 생존본능의 필연성을 벗어난다. 인간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인간 목소리는 생존을 위한 도구 이상이다.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 인간 목소리는 인간을 감동시키고 아름다움을 알게 한다. '감동을 만들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존재의 분계선'이다. 


하지만 언젠인가부터 인간의 감동의 능력은 퇴화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아무도 감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가지고 다니며 딱딱하고 무감동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뭔가 큰 손해를 본다고 믿는다. 


감동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우리는 그 특권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매일 '감동 죽이기'를 연습한다. '감동할 일이 너무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지만 감동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요란한 나팔소리, 화려하고 자극적인 쇼크가 아니라 낙조처럼 소리없이, 여름숲의 향내처럼 은은하게 올 뿐이다.


감동의 능력을 되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것들에서 큰 감동의 원천을 발견하는 것이다. 특히 자기만의 이익, 자기만의 행복에서 벗어나 이웃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들, 그들은 감동의 속성을 알고 있다. 감동이란 명령으로 되지 않지만 명령이 감동의 습성을 기를 수는 있다는 점이다. 그 명령이란 바로 '감동하라!'이다. 감동하는 데 무슨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작은 일에 입 한번 벌리고 탄성의 숨결을 내면 그것이 감동의 비용 전부다. 


이제 신입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 돈 안들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길, 한마디로 인문학의 가치란, 자주 작은 일에 감동하는 것이다. 


지금 '감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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