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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일요일 아침에 드는 생각

아침에 아이튠즈 음악을 재생하니 노래가 나온다. "Time to say goodbye."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는 마치 교향악단의 연주에 맞춰 한편의 시를 노래하는 천사들 같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더 깊어지는 노래, 시간을 초월해 나에게 흔적을 남긴 노래는 오늘 내 영혼을 다시 전율케 한다.


20세기 말 영국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고, 20년전 가천 수련원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제자들을 떠나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의 BGM으로 이 노래를 틀었었다. 그리고 언젠가 대구에 사라 브라이트만이 공연을 온 적이 있었는데 오직 이 노래를 듣기 위해 직접 공연장을 찾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하나의 노래는 한 사람과 함께 나이 먹고 익어간다.




내 방에 있는 시계를 헤아려 본다. 데스크탑 시계, 노트북 시계, 핸드폰 시계, 거실 벽시계, 라디오 시계, 손목시계, 세면장 탁상시계까지 일곱개나 있다. 작은 방에서 모든 시계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시간에 둘러싸여 있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일요일 아침은 이런 생각이 쉽게 떠오른다. 앞으로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길지 않을 것을 아는 이에게 일요일 오전은 회색의 시공간이다. 특별히 무엇을 할 것도 없이 그냥 시간을 보내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기에 좋은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 시간은 내게 말을 걸어온다.


"넌 무얼하며 살고 있니?"


이럴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하느님이 쉼표를 넣은 곳에 인간이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후회스럽고, 코로나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모든 계획이 한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스럽지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어떻게든 계속 이어질 것이다. 쉼표를 마침표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일요일에 쉬셨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이 날을 거룩하게 만드시고 살아있는 것들이 그저 편안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를 바라셨다. 안식일에 우리는 나무(木) 옆에서 자신(人)으로 머무르며 쉼(休, 쉴 휴)을 발견해야 한다. 인간도 시간도 공간도 일요일 아침의 빈틈에서 있는 그대로 머물면 된다.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 사이(間)에서 쉬면 된다. 모든 것은 잠깐이고 덧없다.


"시간이 아까워, 시간이 아까워.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거 당장 하면서 살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석형이 친구들에게 말한다. 보장된 유산을 물려받는 대신 의사로서 친구들과 밴드를 하며 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무얼 하며 살고 싶은가? 나에게 시간은 얼마나 있을까? 


정답 없는 질문이 느려진 시간 사이로 흐른다. 

일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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