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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영화를 통해 우리 모습 보기

미국에 9.11, 한국에 4.16이 있는 것과 같이 노르웨이에는 7.22가 있다.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정부청사에서 폭탄이 터져 8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한다. 그리고 바로 몇 시간 뒤 오슬로 북서쪽 30킬로미터에 위치한 우퇴위아 섬에서 무차별 총기 테러가 발생해 69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다. 범인은 단 한 사람,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로 포수가 노루를 사냥하듯 우퇴위아 섬을 돌아다니며 살인을 자행했다.


경찰이 진입하자 순순히 자수한 그는 난민과 다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나치를 따르는 극우주의자로 학생들이 참여한 청년캠프가 미래의 리더를 양성한다고 믿고 인간 사냥에 나선 것이다. 


충격적인 하루의 사건을 사실적으로 30분간 보여준 뒤 이어지는 2시간 동안 영화 <7월 22일>은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예리하고 독특한 관점에서 보여준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놀랍고 신선했다.


범인 브레이비크는 반성하는 기색이란 전혀 없이 변호사가 정신이상으로 처벌을 감경시키려 하자 오히려 자신이 이성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선언한다. 그 덕에 그는 2012년 8월, 노르웨이 법정 최고형인 '징역 21년'을 선고받는다. 이는 21년 후에 출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위협이 되는 한 계속 감금되는 무기징역에 가까운 선고다.


첫번째 놀라움은 사건을 맡은 변호사다. 범인은 자신이 알던 게이르 리페스타드 변호사를 지명하는데 그는 전 국민의 공분 가운데에서 의뢰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변호를 맡는다. 물론 그 때문에 협박, 위협, 자녀들의 피해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의무를 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의뢰인을 끝까지 대변한다.


두번째 놀라움은 노르웨이 사회다. 충격적인 사건을 마주한 노르웨이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최선을 다해 침착하게 행동한다. 경찰과 공권력은 범죄자를 욕하고 때리지 않았고, 법이 정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애쓴다. 정부의 빠른 대응이 있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사과하는 총리에게 책임은 테러범에게 있으니 국정을 잘 이끌어 달라고 말한다. 분노와 불신, 책임론으로 들끓어야 할 사회가 그 대신 보여주는 침착, 이성,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성숙함은 높은 시민의식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7월 22일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그 사건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충격과 상처, 분노와 불신을 자아냈다.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하고 자신들만 살아나온 세월호 선원들, 돈을 벌기 위해 배를 불법으로 개조한 사이비 종교단체, 부실한 대응과 관리감독을 한 해수부와 정부, 그저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말하는 정치인들까지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고 믿지 못하게 되었다.


영화 <7월 22일>을 보면서 노르웨이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우리 사회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보게 만든다. 정부와 공권력, 변호사, 의사 등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이성적이면서도 최선을 다해 타인을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들조차 당연할 것 같은 행동들, 곧 소리지르고 저주하고 폭력적이 되기 보다는 상처입은 서로를 위로하고 피해자의 입장에 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영화 주인공인 빌야르는 우퇴위아 섬에서 다섯발의 총을 맞고 죽음의 사경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들을 잃은 슬픔, 불구가 된 몸, 언제 죽음을 가져올지 모르는 그의 머리에 박힌 총알 파편을 생각하면 십대에게는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빌야르는 상처없이 살아난 동생을 위로하고 피해자들을 위해 법정에 나아가 범인과 마주한다. 


공포와 분노, 저주와 폭력에서 벗어나 범인 앞에서 당당하게 선 빌야르, 그는 죽은 친구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그에게는 범인이 가질 수 없는 가족과 친구, 미래가 있음을 똑똑이 말한다. 무엇보다는 그는 살기로 선택한다.


영화 <7월 22일>은 보는 내내 몰입감을 느끼며 등장인물들에게 분노하면서 공감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우리나라의 모습과 너무 달라 놀라면서 한편으론 가슴 깊이 부러움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서로를 지켜주고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인간관계와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가 먼 나라 이야기 같아 안타까웠다. 


잘못에 따른 벌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벌을 내리는 사람이 벌이 아니라 감정이 담긴 폭력을 가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잘못일 것이다. 범인의 변호사는 자신의 의무를 다한 뒤, 악수를 청하는 범인의 손을 잡지 않는다. 다시는 그를 만날 일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앞으로 그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더라도 그의 자식들, 자식의 자식들이 막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노르웨이에서 단 한 사람도 그 범죄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변호사는 가장 강하게 단죄한다. 언젠가 범인이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닫는 것은 그의 몫으로 남겨두면서.


영화 <7월 22일>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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