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두 교황

교황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두 교황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두 교황이란 은퇴한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두 교황은 그리스도교 2천년 역사에 있을 수 없던 일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황은 종신직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계시고, 선종 후에 콘클라베를 통해 추기경단에 의해 선출됩니다.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은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랏칭거 추기경은 유명한 독일의 신학자로 가톨릭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데 평생을 몸바친 학자셨습니다. 지금은 성인이 되신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 시절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는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명철함과 단호함을 지닌 좋은 뜻의 보수 대표였습니다. 2005년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이 돌아가시고 이분이 교황님이 되셨을 때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걱정했습니다. 교회가 다시 보수적으로 변할 것을 말입니다. 


2013년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 교황직에서 사퇴하신다고 했을 때 전세계는 놀랐습니다. 재임 교황님께서 건강하신데 사퇴하신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이분 역시 대단합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주교님이시면서 버스를 타고 다니고 직접 요리하고 멋진 주교관이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 사는 분이셨습니다.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셨고 그들을 돕는 일을 앞장서서 하셨습니다. 


호르헤 추기경님이 교황으로 선출되셨을 때 옆에 계셨던 브라질 추기경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십시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호르헤 추기경님은 한번도 교황의 이름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성인의 이름을 선택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코는 지금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성인입니다. 1200년대 이태리의 아시시에서 살았던 이 젊은이는 방탕한 생활을 접고 하느님 아버지만을 섬기기로 약속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는 철저하게 가난한 사람이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 (1182-1226) @google.com


모든 것이 풍요로운 우리 시대에 가난이 필요할까요? 정말 필요합니다. 교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 가난을 직접 보여주십니다. 교황이 되고 나서 바티칸의 화려한 숙소가 아닌 순례자를 위한 작은 방에 지금도 머물고 계십니다. 교황에게 부여된 어떤 권위나 부도 마다하고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고 계십니다. 그분의 손목 시계는 오만원짜리 플라스틱이며 철제 십자가 목걸이는 20년 넘게 쓰고 있는 것이며 구두는 아르헨티나에서 신던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방문해도 가장 작은 차를 타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 곧 빈민가, 교도소, 난민수용소, 병원을 먼저 찾아가십니다. 그분 삶이 가난이 무엇인지, 돈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택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다미아노 성당에서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나의 집을 고쳐라(Restore my house).”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말씀을 지금 실천하고 계십니다. 


먼저 그분은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고자 합니다. 가장 약해서 가장 크게 다치고 아픈 지구를 위해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찬미를 받으소서>라는 환경을 주제로 한 첫번째 교황 회칙을 발표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노래한 ‘태양의 찬가’에서 제목을 정하고, 더불어 사는 집인 지구를 돌보기 위해 신앙의 관점에서 성찰하고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류와 생태계의 위기를 체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2015년에 발표된 이 회칙은 큰 빛입니다. 


두번째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정을 살리고자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줍니까?”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냅니까?” 이것이 모든 가족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인간을 살리고자 합니다. 특별히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 난민, 이주민, 빈민, 원주민, 어린이, 수감자, 병든 이 등을 찾아나섭니다. 그분의 발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누가 우리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님, 이분은 누구인가요? 여든 중반 나이에 아무것도 가지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에게 왜 세계는 주목할까요? 그분의 힘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분의 말이 곧 그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무기보다도 강한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시는 분, 그분은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땅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늘 유쾌하십니다. 그분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기쁨이 있고 꺼지지 않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는 이것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제게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으로 타인의 기분을 더 낫게 해 주고 더 행복하게 해 주는 아름다움의 예를 들어 달라고 한다면 제 마음에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미소와 유머 감각입니다. 웃을 수 있는 능력! 웃음은 마음의 꽃입니다. 특히 웃음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고 남을 조정하거나 유혹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웃으십시오. ‘신선한 웃음’이라고 문학에서 불리는 것처럼요.

그리고 유머 감각입니다. 여기서 개인적인 고백을 하겠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가 끝난 후 저는 성 토마스 모어의 ‘쾌활함을 위한 기도’를 낭송합니다. ‘유머 감각’은 여러분을 웃게 하는 방법에서 시작합니다. ‘오 주여, 소화가 잘되게 하소서. 그런데 소화시킬 것도 좀 주소서!’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땅에 있는 두 교황에게 축복하소서.

그리고,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땅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