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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납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그가 남겼을만한 세 편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세 편지 가운데 첫번째는 마카오에 유학와서 어머니께 쓴 것이며, 두번째는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어머니께 쓴 것이며, 마지막 편지는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직전에 페레올 주교님과 교우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1 마카오에 유학와서

어머니, 먼 이국땅 마카오에서 문안 인사 올립니다. 벌써 고향땅을 떠난지 이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는 그동안 마카오 신학교에 입학해서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슬픈 소식은 함께 유학을 왔던 열일곱살 동무 최방제가 얼마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방제는 저와 최양업과 함께 엄동설한에 부모님들께 하직인사 드리고 고향땅을 떠나 의주, 만주, 중국을 거쳐 8개월을 걷는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마카오에 도착했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약했던 그는 기력이 쇠해져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리아에 걸렸고 힘들게 투병하다가 하느님께로 돌아갔습니다. 동무가 세상을 떠나니 저와 최양업은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에 큰 박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박해로 순교하시고 어머니는 의지할 곳 없이 떠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는데 어찌 지내시는지 제 애간장이 다 녹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너무도 답답합니다. 마음은 고국으로 달려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오나 부모님께서 제게 천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 하셨으니 견디고 있을 뿐입니다. 보고싶은 어머니, 부디 몸 성히 잘 계십시오. 불초소생이 어서 공부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찾아 뫼시겠습니다.   


#2 사제서품을 받고

보고 싶은 어머니, 제가 드디어 사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8월 17일 상해에 있는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님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고 일주일 뒤에 횡당 신학교에서 첫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한국의첫 사제가 된 저를 위해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몇몇 신자분들은 어서 빨리 어머니를 찾아 모시자고 제게 말을 하였습니다만 저는 먼저 조선교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차마 자식된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까닭은 박해받는 조선의 신자들이 사제를 기다려 온지가 40년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1821-1846) @google.com


어머니, 당신께서는 제게 언제나 신앙 선조들의 모범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죠. 남녀 차별이 있던 시대에 천주를 믿는다고 어떤 여인이 관아에 끌려가 겪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너는 왜 왔느냐?” 관장이 모욕적으로 물으니 끌려온 여인이 조용히 대답했죠. “저 또한 천주님을 믿는 사람이니 국법대로 다스림을 받으러 왔습니다.” 관장이 언짢아 다시 묻습니다. “네가 믿는 천주님이 도대체 어느 책에 적혀 있느냐?” 그 여인이 대답하죠. “저는 글을 모릅니다.” 어처구니 없는 관장은 글도 모르는게 와서 국법을 운운하니 화가 나 “글도 모르는게 뭘 안다고 천주를 믿느냐, 네가 믿는 천주님을 본 적이나 있느냐?”하고 다그칩니다. 여인이 “본 적이 없나이다.”하고 대답하니 “봐라, 글도 모르고 본 적도 없는 천주를 뭘 가지고 믿는다고 큰 소리 치느냐?”하고 무시하며 다그칩니다. 그때 여인이 대답합니다. “나으리, 제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다면 저는 이 나라의 임금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 보내셔서 오신 관장님을 보고 저는 임금님이 계신 줄 믿나이다. 세상이 있는 걸 보고 이 세상을만드신 분을 어찌 믿지 않겠나이까.”  


그 소리에 관장의 말문이 탁 막혔습니다. 화가 나니까 벌떡 일어나 큰소리 칩니다. “천주교 신자는 모두 입만 살아가지고 말은 잘한다. 네가 그렇게 잘 안다니 묻겠는데 천주교에서는 천국 가는 길은 좁고 지옥가는 길은 넓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냐?” 하고 묻습니다. 여인이 대답합니다. “예, 저도 그렇게 듣고 알고 있나이다.” 그러자 관장이“아녀자인 너까지 그 좁은 길로 갈 것 뭐 있느냐? 천주교가 사랑을 실천한다면 천당이 좀 넓도록 너는 양보하고 넓은 길고 가라.”하며 비꼽니다. 그러자 여인이 그럽니다. “나으리, 나으리께서는 천 권의 책도 더 읽으셨을 겁니다. 그 많은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나으리의 가슴이 비좁더이까? 천국은 그와 같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모두 이렇게 말하고는 죽음을 맞이한 신앙 선조들의 이야기를 어머니는 자주 제게 해 주셨지요. 


어머니, 이렇게 죽음을 무릎쓰고 신앙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제가 먼저 가야하겠습니다. 조선에 주교님과 다른사제들도 들어오도록 길을 만든 후에 어머니를 꼭 찾아가겠나이다. 그때까지 부디 몸 성히 잘 계십시오. 천주님께어머니를 맡기나이다. 


#3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직전

페레올 주교님, 이제 저는 천주님께 갑니다. 사제가 되고 1년 1개월의 짧은 사목이었지만 목자 잃은 양떼를 돌보며천주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달았습니다. 십년전 마카오로 사제가 되기 위해 떠났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모든 것을 남겨두고 새남터로 나아가 천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합니다. 다만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주교님, 우리 어머니를 주교님께 부탁드립니다. 일찍이 어린 자식을 이국만리에 보내고 믿음 때문에 지아비를 잃고 의지할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는 거지가 되었다 하나이다. 그 어머니를 주교님께 부탁드리고 저는 편안히 갑니다.


주교님, 조정에서는 제가 외국어에 능통하고 신식교육을 받은 것을 알고는 온갖 좋은 말로 벼슬과 재물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갈 길을 알고 그 길을 끝까지 걷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교우들에게 한마디 남기겠습니다. 


103위 한국순교성인 @google.com


교우들은 보십시오. 우리 벗이여, 생각하고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아득한 태초로부터 천지만물을 지어 제자리에 놓으시고, 그중에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까닭과 그 뜻을 생각해 봅시다. 온갖 세상일을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습니다. 이같이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태어난 보람이 없고, 살아있더라도 쓸데없습니다… 


이제 우리 조선에 교회가 들어온 지 오육십여 년 동안 여러 번 박해가 일어나 교우들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오늘날 박해가 불길같이 일어나 여러 교우들과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여러분까지 환난 중에 있습니다. 이에우리는 한 몸이 되어 애통한 마음이 어찌 없겠으며, 인간적인 정 때문에 차마 이별하기에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에서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님께서 돌보신다’했고, ‘모르심이 없이 돌보신다’ 하셨습니다. 어찌 이렇듯 한 박해가 주께서 하고자 하신 일 아니면, 주님의 상이나 주님의 벌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거룩한 뜻을 따르며 온갖 마음으로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 대장의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과 마귀를 공격합시다.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는 이런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해서, 마치 용맹한군사가 무기를 갖추고 전쟁터에 있음과 같이 하여, 우리도 싸워 이겨냅시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도우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환난을 거두시기까지 기다립시다. 혹시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해갑시다.


여기 감옥에 있는 스무명의 사람들은 아직 주님의 은총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여러분은 그 사람들의 가족을 부디 잊지 말아주십시오. 할말이 무궁한들 어찌 편지글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 그칩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공을 착실히 닦아, 천국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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