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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류와 순류

연중12주일 강론

호수에서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에게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이 닥쳤습니다. 당황하고 두려운 제자들은 주무시던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며 외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 


우리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정과 나라, 세계의 위기, 자녀들 교육의 위기, 성당에 나오지 않는 신자들로 인한 신앙의 위기까지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다가 대학 교육도 위기를 맞았습니다. 코로나로 가속화된 학생 정원 감소로 인해 지방대학은 초유의 미달 사태를 맞았고 생존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황하고 두려운 신자들, 사제들이 모두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며 외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니,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베개까지 베고 보란듯이 고물에서 맘 놓고 주무시고 계시다니 말이 됩니까? 평소 힘들 때마다 곤경의 순간에 기도를 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으셨던 것처럼, 늘 함께 하신다고 하셨지만 위기와 고통의 순간에 아랑곳하지 않으시니 우리에게 너무 무심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우리에게 무엇인가 보여주면서 가르치고 계신 것은 아닌가,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무엇인가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신가 하고 말입니다. 


드라마 <미생>을 기억할 것입니다. 고졸 출신으로 대기업 상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장그래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새로 영업팀에 들어온 박과장은 장그래에게 인신공격을 하며 말도 안되는 온갖 일을 떠맡깁니다. 당혹스럽고 두려운 상황에서 장그래는 자신의 바둑기보 공책을 펴고 다음의 글을 되새깁니다.   


“위험한 곳을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강렬한 곳을 외면하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용기다…(상대가)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 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역류에 순류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화답송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광풍을 순풍으로 가라앉히시니 거친 파도가 잔잔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위기의 순간, 광풍과 역류, 거친 파도에 겁먹은 우리의 마음은 거센 바람이 부는 호수와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풍랑이 일기 때문에 겁이 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에 겁이 나는 것입니다. 거칠게 풍랑이 이는 밤이어도 우리와 함께 계신 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풍랑 한가운데에서도 베개를 베고 고물에서 주무심으로써 우리에게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으십니다. ‘두려워 하지 마라. Do not be afraid!’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 아닙니다. 사랑의 반대는 두려움입니다.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좇아내듯이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다면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 4,39) 


예수님께서 요동치는 우리 마음을 꾸짖으시고 평화를 명령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집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리석게 행동하는 대신 ‘우리를 다그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으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새하늘 새땅에서는 바람과 호수도 복종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가정, 성당, 나라, 대학의 위기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이천년 교회 역사에 이보다 더한 어려움, 더한 위기, 더한 역류와 광풍도 있었지만 우리는 헤쳐 왔습니다. 다시 한번,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거센 파도와 폭풍 속에서도 원하는 항구로 이끄시는 주님, 당신이 베푸신 자애와 기적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늘 두려움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 오늘 밤은 당신 곁에서 베개를 베고 편안한 잠을 청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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