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가장 좋은 날도 월요일이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말한 감옥에서 만난 노인 목수 한 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노인은 집을 그릴 때 보통 사람들과는 반대로 그렸다고 한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과는 달리 그는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집을 그렸다. 집을 짓는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행동으로 실천하기보다 말과 머리로만 집을 지어 온 나의 한계를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제생활도 마찬가지다. 주춧돌을 먼저 놓아야 하는데 자주 사람들에게 드러낼 지붕을 그리고 있는 나를 본다. 멋진 결과만 먼저 기대하고 기초는 신경 쓰지 않는 격이다. 신자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기를 원하면서 헌신과는 거리가 먼 자기만족이나 인기를 바라고 하는 일이 대부분 그렇다. 사제가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서 신자들의 신앙심이 깊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춧돌부터 먼저 놓는 사제생활,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도해야 한다.
여기서 기도란 단순히 영적인 것이 아니라 육적인 토대 위에 놓인 것이다. 기도를 하면 영혼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달리기를 하면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런 다음 기도라는 주춧돌 위에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싶다: '기쁘고 성실하게, 겸손하고 지혜롭게.' 이는 내가 기도하는 모든 것을 세우는 방식이다. 그렇게 실천하는 삶을 살면 지붕은 착한 목자를 따르는 신자들이 직접 올릴 것이고 그 그늘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쉬게 될 것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시편 23,1-3).
월요일의 또 다른 이름은 퀘렌시아다.
류시화 작가가 쓴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보면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고 한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그곳에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으고 다시 싸우러 나간다. 그곳을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르는데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월요일 달리기는 나에게 퀘렌시아다.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고 본연의 자기 자신에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의 퀘렌시아에 오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다. 월요일 달리기는 호흡을 고르며 부정적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힘을 얻는 퀘렌시아다. 내가 내가 될 수 있는 곳에서 다시 생기를 얻는 순간, 나는 퀘렌시아에 있다.
이렇게 퀘렌시아에서 다시 힘을 얻는 월요일 달리기는 나에게 '렛잇비(Let it be)'를 되새기게 한다. 주일 하루 열심히 내 몫을 했으면 월요일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시간이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방문을 받고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접한 마리아처럼,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나에게 생길 때도 있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칠 때도 있지만 달리기를 하는 월요일은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루카 1,38 참조)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그것은 그동안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행동했던 것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볼 수 있도록 먼저 나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게 만든다. 그래서 진정한 기도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느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배우는 시간이 월요일이다.
마리아의 렛잇비처럼, 모든 것을 마음에 곰곰이 되새기는 가운데 맞이하는 월요일은 나를 내려놓는 시간, 나의 시선을 바꾸는 시간, 돌아가신 원장신부님 톰의 거룩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