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8년만의 귀국: 그리고, 볼리비아

무력이 옳다면 사랑은 설자리가 없소. 그런 세상에서 나는 살아갈 힘이 없소. 가브리엘 신부 (영화 <미션> 중에서)


2011년 8월 말 귀국한 다음날부터 나는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성당 제1보좌 신부로 일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계산성당은 주일 하루만 해도 미사가 8대가 있었다. 미사를 봉헌하지 않을 때에는 성체 분배, 레지오 강복이 있었고, 젊은이들 성경공부와 모임도 이끌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일 하루를 빠지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마라톤 대회라는 목표가 없는데다 몸과 마음이 모두 바빴기 때문에 달리기에 차츰 소홀해졌다.


바쁘고 피곤했으므로 늘 쉬고 싶었다. "편안해지고자 하는 욕망은 슬며시 집에 손님으로 들어와 주인이 되고 나중에 지배자가 된다."라는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말이 나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012년 8월에 나는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님의 비서 신부로 발령을 받았다. 그것은 대주교님의 허락을 얻는다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수 있음을 뜻했다. 그래서 그해 10월에 있는 '경주국제마라톤'에 참가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사람 8(Living Person 8)'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보통 2년 임기로 바뀌는 보좌신부 인사의 규칙대로였다면 2012년은 살아있는 사람이 달릴 수 없는 해였다. 하지만 갑자기 1년 만에 이동을 명받게 되자 마치 하느님께서 ‘올해도 어김없이 달려라.’하고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히 경주국제마라톤 대회 등록을 하고 혼자 뛰려고 준비했다. 그런데 의리(?) 있는 계산성당 청년 몇 명이 같이 달리겠다고 나타났다. 비록 세 명의 10킬로미터 동행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살아있는 사람 8, 2012년


한국에서의 첫 마라톤은 마라톤이 늘 그렇듯이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나의 마라톤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이다: 3:30:07. 한국에서 첫 마라톤이었지만 교구청으로 간 뒤에 두 달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마음만으로 달릴 수 없는 마라톤을 몸으로 체험하며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라고 미리 다짐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나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완주했음에 만족할 수밖에. 그렇지만 한국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기에 좋은 출발이었다. 더 떨어질 수 없는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1986년으로 한번 돌아가 보자.


대구 아세아 극장에서 한 영화가 개봉했다. 마침 그해에 천주교 신자가 된 나는 성당에서 얻은 티켓으로 그 영화를 보았다. 중학교 1학년이 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강렬한 이미지와 아름다운 음악, 선교사제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Mission)>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6년 여름 뉴욕 맨해튼에서 영화 미션을 다시 만났다. 예수회 신부 대니엘 베리건(Fr. Daniel Berrigan SJ, 1921-2016)은 베트남전에 반대해 1968년 메릴랜드 징병 사무소에 침입해 수백 장의 징집 대상자 명부를 불살라 3년형의 징역을 살았다. 그후 반핵평화운동을 계속하며 맨해튼에 머물고 있었는데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가 설립한 '성요셉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때 나는 한달간 맨하튼에 머물며 도로시 데이가 시작한 '가톨릭노동자운동'에 대해서 체험하고 있던 중이었다.


Fr. Daniel Berrigan SJ, 1921-2016


댄 신부는 롤랑 조페 감독이 영화 미션을 제작할 때 자문 역할을 하며 제레미 아이언스와 로버트 드 니로에게 예수회 사제와 수사 역할에 대한 조언을 했다. 그러다가 롤랑 조페 감독의 부탁으로 영화 미션에 예수회 수사로 직접 출연까지 한 것이다. 미국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 영화에도 출연했던 그와의 만남은 내 안에 간직하고 있던 미션에 대한 기억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흘러 2008년 여름, 나는 클리브랜드에서 일하고 있던 치과의사 부부와 딸, 치대지망생 젊은이를 데리고 볼리비아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대구대교구 사제들이 원주민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시골의 작은 인디오 공동체를 방문하여 가난해서 병원을 방문할 수 없었던 그들의 썩은 이빨을 매일 수백개씩 뽑았다. 그리고 준비해 간 칫솔과 치약을 나눠주고 사용법을 가르쳤다.


그들은 영화 미션에 나왔던 과라니족이었고 그곳에 있는 성당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세운 것이었다. 그 가운데 300년 역사의 콘셉시온 대성당에서는 유럽에서 잊힌 17세기 바로크 음악이 원주민들의 손을 통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2년마다 여름이 되면 아마존 숲속에서 '국제 바로크 음악제'가 열린다. 음악을 통해 만난 인디오와 가톨릭, 그들의 역사와 숨결이 남아있는 볼리비아는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미션에서 보았던 예수회 사제들의 흔적을 직접 보며 가난한 이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이란 무엇이며, 나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콘셉시온 대성당, 2008년


그후 볼리비아는 내 사제 정체성의 거울과 같은 곳이 되었다. 젊은 동료 사제들이 투신하여 선교를 하는 그곳에서 영화 미션에서처럼 이과수 폭포를 거슬러 오르지는 못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그때 내가 미사 때 만난 과라니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있는 사람으로 모은 성금을 볼리비아에 있는 사제들에게 보내 그곳 어린이들을 위해 성탄절에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새로 선교사제가 파견되기 시작한 내전 중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역시 성금을 보냈다.


과라니 소년, 2008년


그렇다면 마다가스카와의 인연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할 것이다. 사라를 돕기 위해 매년 살아있는 사람으로 성금을 모아 사랑의 선교회 엠마누엘 수사님에게 보냈었는데 2011년 내가 한국으로 귀국할 즈음 수사님 역시 인도로 발령을 받아 마다가스카를 떠나셨다. 새롭게 공동체를 맡은 수사님을 나는 만난 적이 없었고 한국으로 귀국하자 자연스럽게 연락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 대신 볼리비아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어린이들을 돕게 되면서 마다가스카의 사라는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음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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