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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파타!

연중제23주일 강론

사도 야고보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야고 2,5) 


가난한 사람이 믿음의 부자가 된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미국 대학교에서 교목신부로 있을 때 대학생들을 데리고 남미의 에콰도르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에콰도르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8.16 공동체를 찾아갔습니다. 


왜 이 공동체를 8.16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8월 16일에 몇몇 사람이 국가가 관리하는 쓰레기 매립장에 몰래 들어와 그 위에 집을 지으면서 동네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두 사람이라면 국가가 그들을 붙잡아 처벌할 수 있었겠지만 땅이 없는 수천 수만명이 순식간에 갑자기 이주해 와서 땅을 점령해 버렸기에 나라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집을 지었다고 했지만 작대기 네 개를 땅에 박고 그 위를 천막으로 덮을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전기도 물도 없는 8.16 공동체에서 우리 일행은 모니카 집을 방문했습니다. 


모니카는 남편과 아이들 세 명과 함께 나무판자와 함석판을 엮어 만든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좁은 집에 모여 앉은 우리는 각자 자신의 소개를 했는데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저는 가톨릭 신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니카가 놀란 표정으로 제가 정말 신부인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평생동안 자신의 집에 사제를 모셔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제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걷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모니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말이 깊은 신앙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문을 마치고 떠나려고 하는데 모니카가 제게 자신의 집을 축복해 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판자집을 둘러보며 기도서도 없고,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니카에게 물을 한잔 부탁했습니다. 모니카가 컵에 담아 조심스럽게 가져온 물은 분명 비싼 돈을 주고 산 귀한 물이었습니다. 저는 가족들을 집 가운데로 초대했고, 학생들에게 원으로 가족들을 둘러서도록 했습니다. 


저는 물을 축복했습니다. 세례 때의 물, 갈증을 없애주는 물, 생명을 살게 하는 물을 축복하는 기도를 바친 후 그 물로 집을 축복하고 가족들 이마에 십자가를 그었습니다. 


그때 ‘후둑, 후두둑’하며 함석판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쏴아’하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지투성이인 마른 땅 위에, 날마다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가난한 사람들 위에, 아이들 교육 때문에 늘 걱정인 부모들 위에, 그리고 기도하는 모니카 집 위에 단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모니카뿐만 아니라 서로 어깨에 손을 얹은 가족들, 학생들, 저의 눈이 눈물로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 그들을 사랑으로 축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니 모니카는 참으로 부자였습니다. 가난했지만 믿음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부유했고 우리는 그 덕에 모니카 집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미국 클리브랜드 한인본당에는 백만불짜리 집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유명한 의사들이 있었지만 저는 그들의 어느 집에서도 모니카 집보다 깊은 사랑과 환대를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이었고 허영심이 강했으며 남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고 싶어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것은 다 가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어둡고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면 모니카 가족이 떠올랐습니다. 


가난했지만 서로 의지하며 믿음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부유했던 모니카 가족과 달리 의사들은 소유욕과 자만심에 갇혀 궁핍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성녀 마더데레사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현대의 가장 큰 병은 나병이나 암, 폐결핵이라기보다는 자기를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이 버림받고 있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가장 큰 악은 사랑과 자비의 부족, 길거리에서 살고 있는 이웃에 대한 얼음같이 찬 무관심, 그리고 착취와 부패, 가난과 질병에 사람이 희생되도록 버려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에파타!’, 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시며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해 주십니다. 


우리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까? 


걱정, 스트레스, 불안, 상처로 마음이 닫힌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소리치십니다. 


“에파타! 너의 마음을 열어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4-6).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자유 안에서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를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에파타!” 


욕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것을 내어 놓기 위해서, 에파타! 


진정한 기쁨과 사랑을 누리기 위해서, 에파타! 


부모는 자식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신자는 사제와 수도자에게, 에파타!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각자 양손을 가슴에 얹으십시오. 그리고 눈을 감고 주님께 청하십시오. 


‘주님, 돌같이 굳은 이 마음, 미움으로 가득찬 이 마음을 열어주소서. 에파타!’ 


이제 양손을 위를 향해서 들면서 죄인의 기도를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며 다같이 소리쳐 봅시다.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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