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왜 신부가 되었느냐고?"
난 그 이유를 한 열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되어 지루할 것이다. 그래도 굳이 답을 기다린다면 오늘 한가지 이야기할 것이 있다.
십년전 오늘 저녁 8시, 나는 계산성당에서 첫 교리반을 시작했다.
8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계산성당 1보좌로 바로 일을 시작했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청년교리반을 맞아 첫 교리수업을 시작했다. 십년전 오늘 저녁 8시에.
설마 내가 그날과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대신 십년전 그때 그 젊은이들의 깜짝 방문이 있었다.
샴페인, 형형색색의 케익, 커피를 싸 들고 십년전 오늘 저녁 8시에 그들이 찾아왔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그들에게 나는 아직도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수줍게 건넨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대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삼겹살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서 잠시 침묵 가운데 짠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나는 잊고 살아왔지만 십년을 손꼽아 헤아렸을-적어도 이날을 기억하고 준비한-이들의 마음 때문에 오늘 저녁 내리는 비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내가 사제로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십년전 오늘 저녁 8시를 기억할 수 있는 축복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시간에 한 조각을 차지하고, 좀 더 욕심을 낸다면 꽃까지 될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지만 나로 인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그 순간을 기억하는 이들 때문에 잠시나마 소중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은혜를 체험한다.
그 정도면 살 만한 이유, 비 내리는 밤에 혼자서 감상에 젖을 이유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