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ME 382차 비대면 주말 보고서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 마음 속 생각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1월부터 부부들을 위한 ME주말이 열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대화와 소통을 중심에 두고 있는 ME주말 2박 3일 피정을 온라인으로 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해 보였다.
그동안 우리가 체험했던 줌(Zoom) 화상 회의는 필요에 의해서 선택한 것일 뿐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라도 좋은 시절이 오면 그때 같은 공간에서 가까이 앉아 서로 마주보면서 웃고 이야기 나눌 때가 오리라 믿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 같았다.
하지만 삶은 우리가 원하는, 혹은 기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당면한 문제를 외면하고 더 나은 시절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그런 순수한 마음이 보상받지는 않는다.
정말 현실을 직시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먼저 코로나 펜데믹으로 부부사이의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 소통 불능으로 가중된 위기의 부부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기 위해 존재하는 대구 ME 발표부부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 했다.
그래서 8월 대구 ME 화상 월례회의를 통해 '382차 비대면 주말'을 열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 월례회 안건으로 한차례 의견이 있었으나 대부분 발표부부들의 부정적 의견으로 무산되었던 의견이 반년만에 바뀐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엄중해졌으니까.
마음을 모았으니 남은 것은 재능을 차곡차곡 모으는 일이었다. 8월 중순부터 매주 주말에 청도에서 모였다. 발표부부 가운데 한 부부가 운영하는 치과 2층이 비어있어 발표장으로 쓰기에 적합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화면과 오디오 송출, 인터넷 연결에 대해 실험해 보면서 발표장 셋팅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노력과 시간, 필요한 장비가 쌓여갔다.
일은 마음만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 모이면 일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세 발표부부, 한 지원부부가 모여 머리를 모아 최선의 방법을 찾아갔다.
때론 일이 너무 중요하거나 일에 너무 몰두하다보면 놓칠 수 있는 마음을 모으고 서로 격려하며 때론 웃는 일도 뺄 수 없었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마음의 일이므로.
그렇게 한 달 반이 흘러갔다. 열심히 가시적 성과를 쌓고 준비가 착실히 되어갔지만 마지막 남은 일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멍석을 깔아놓아도 사람이 없으면, 잔치를 벌여도 손님이 없으면 그 모든 일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피 말리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신청자들이 없으니 우리 안에 불안이 커져갔다. 걱정한대로 비대면 ME 주말은 하지 말아야 할 것, 혹은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세 부부가 참가 신청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주말을 열기로 했는데 한 부부가 마지막 모임 전에 참가가 어렵다고 연락이 왔다. 주말을 취소해도 모두가 공감할 때였다.
하지만 두 부부로라도 주말을 열자고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부부가 신청하여 결국 세 부부로 주말을 열게 되었다.
그런데 주말 시작 전에 마지막 확인 연락을 했는데 한 부부가 다시 못하겠다고 했다. '이것 참 ~' 어쩔 수 없이 두 부부라도 시작하려 했는데 한 발표부부의 동생 신부님이 연락이 되어 뒤늦게 여정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부부와 신부님 한 분을 모시고 382차 비대면 ME 주말이 시작되었다.
줌을 통해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발표와 대화가 이어졌다. 결혼 30년, 40년차 부부들이 발표부부들이 이끄는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오랫동안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으면 힘들텐데도 요령한번 피우지 않고 화면에 꼭 붙어서 열심히 참가하고 나누기도 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쌓여가는만큼 부부사이의 이해도 깊어졌다. 비록 화면 속으로 만나는 부부들이었지만 그들 얼굴이 밝아지고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모습이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발표부부들 역시 참가부부로 열심히 함께 하며 최선을 다해 제 몫을 했다. 매 끼니마다 참가부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신호를 주면 도시락을 배달해 주었던 대구 ME 부부들 역시 고마웠다.
사랑은 가장 센 바이러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무리 사람을 갈라 놓아도 사랑이 있으면 그 심연을 뛰어넘을 수 있다.
2박 3일 ME 주말 피정을 마치며 '비대면 ME 주말이 어떠했는지' 참가 부부들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치 개인 과외를 받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부담없이 편안하게 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놀랍습니다. 이렇게 좋은데 걱정부터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사랑의 바이러스가 이미 퍼진 모양이다. 온라인과 거리, 두려움과 걱정을 넘어 모두가 변화와 은총, 사랑과 기쁨을 체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대면 시대에 사목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현실은 여전하다.
하지만 무엇인가 상상하고 시도하면서 마음을 모으고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 사람사이의 거리나 걱정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대구 ME 382차 비대면 주말이 내게는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