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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람을 믿나?"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에 대한 소고

이야기는 힘이 있다. 좋은 이야기는 생명력이 강하고 최고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오징어게임' 역시 나름의 힘이 있다. 오징어게임에는 일본 영화에 대한 클리셰, 엉성한 구성, 진부한 이야기 소재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 등 비판할 것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가 열광하는 이야기, 한국 어린이 게임이라는 독특한 소재, 서바이벌 게임 같은 스토리는 여전히 힘이 있다.


이야기의 힘은 다양한 해석을 가져온다.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의 혹평도 있지만 열광하는 자의 컬트도 존재한다. 해석과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어린 시절 '오징어 가생'을 하고 자란 주인공 성기훈과 같은 세대 사람으로 구슬치기, 달고나 뽑기, 딱지치기 등을 보면서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1974년생 성기훈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현실세계의 냉혹함 앞에서 더 커진다. 가계대출 증가와 파산, 빚으로 인한 지옥같은 현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낭만적인 유년시절을 더 미화할 것이다. 그래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게임 앞에 서면 모두 어린이가 된다.


그런데 게임의 탈락이 죽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총에 맞아 죽는다니, 말도 안되는 설정 앞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실제 삶도 어느 면에서는 닮아 있다. 


경쟁과 생존 앞에서 무조건 앞을 향해 뛰어야 하고, 가능하면 남 뒤에 숨어야 살 확률이 높은 것이 인생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결승선을 넘어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 해도 말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의 불행은 채울 수 없는 우리의 똑같은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우리는 모두가 가지길 원하는 외모, 직업, 능력을 통해 결국에는 돈으로 귀결되는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 돈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지만 돈만 좋아하고 돈만 필요한 사람은 넘쳐난다. 그래서 돈을 돈으로 얻으려다 보니 빚더미에 앉고 가진 것들을 모두 잃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 남은 구원 역시 돈이다.


돈이라는 구원


욕망의 끝은 파멸이다. 그 찬란하고 화려한 길은 안락함과 인기, 만족함과 비교우위의 우쭐함으로 이어져 있다. 그 길의 끝을 다 알면서도 계속 걸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남이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부재는 불행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자신을 알지 못하고서는 한걸음도 새롭게 나아가지 못한다.


인간은 결핍의 존재다.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이 있다. 돈이 아무리 있어도, 혹은 하나도 없어도 무료해 견딜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은 스스로는 결핍을 채울 수 없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게임의 왕자였던 오일남 역시 심심함이라는 결핍을 메꾸고자 오징어게임을 만들었고, 성기훈은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모자랐고, 서울대 출신의 조상우는 직업윤리가 결핍되었고, 탈북인 강새벽은 가족과 조국이 결핍되었다. 


그렇다면 결핍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결핍은 친구와 이웃을 필요로 한다. 혼자서는 못할 일을 친구와 같이 하고 결핍을 메꿔주는 이웃 덕분에 우리는 살아간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나의 결핍을 메꿔주는 부모나 친구가 그렇게 소중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의 결핍을 나약함으로 보면서 숨기고 인정하지 않고 그 대신 다른 것으로 채워간다. 


어릴 적 재미있게 했던 게임들을 다시 하면서 파괴되는 어른들의 동심은 이미 잃어버린 어린이 같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이기기 위해서라면 양심, 게임의 규칙, 배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어른들의 게임은 그 시절의 형태만 띈 서바이벌 게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 스스로 찾아든 오징어게임, 한 사람의 목숨값 1억을 걸고 게임을 하면서 누구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민, 협동과 노인의 지혜와 타인의 능력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오직 혼자 살아남아 모든 것을 차지하려는 마음 이면에는 게임 설계자가 바라는대로 흘러가는 인간의 욕망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오징어 게임


온전히 공평한 게임은 있을 없고, 다수결 원리도 부족함이 많지만 그래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있던 성기훈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오징어게임이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때로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만이 기댈 언덕이기에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남을 속이고 혼자만 살아남는 것보다는 누구 하나 나를 믿어주는 '깐부'가 있어야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내 편이든 남의 편이든 결국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무슨 게임이든 무조건 이기려는 우리에게 왜 게임을 해야 하는지, 게임의 상대편은 누구인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물어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미 게임의 노예가 된 것이다.


인생은 짧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인생의 게임에서 이겨도 죽음이라는 게임에서는 이길 수 없다. 


무얼 위해 살아갈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할까 물어본다.


오징어게임, 옛날로 돌아가 현재를 보며 한마디만 한다면,


그때도 지금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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