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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쁨

살아있는 사람 17을 마치며

언젠가 지금 이 시간을 기억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글로 몇 자 남깁니다.


2년여간의 전쟁과도 같은 코로나와의 사투의 끝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러 다시 모이기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더디게 진행된 사회적 거리두기의 제약으로 '살아있는 사람 17 DCU'는 초유의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전체 그룹을 20킬로미터, 10킬로미터, 5킬로미터 참가자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 9시, 9시 45분, 10시 30분에 따로 출발하기로 계획한 것입니다. 전체가 모일 기회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참가인원도 400명으로 제한했습니다.


겁없는 대학생 130여명이 20킬로미터를 뛰겠다고 신청했습니다. 그들의 젊음과 패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누구라도 인생에서 20킬로미터를 뛸 일은 거의 없을텐데 무엇보다 그 길이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님을 이들은 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참고로 대학생들은 뛴 거리만큼 봉사점수를 받게 되어 있었으니 정말 최선을 다해 뛰었을 것입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는 손님을 맞을 준비를 참 잘해 주었습니다. '사랑나눔봉사단'에서 적극적으로 모든 준비를 해 주었고, 봉사자 60여명을 따로 모아 행사진행을 맡아 주었습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특별한 배려였습니다.


마라톤에 참가한 달리는 신부들


시월의 가을 어느날, 살아있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있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파란 하늘, 따듯한 햇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살아있음을 체험하는 것이 은총이고 은혜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단순히 모이고 뛰고 먹고 미사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참 벅찼습니다.


허진혁 바오로 신부의 노래로 시작된 미사는 오늘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각자의 땀과 호흡, 정성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한마음 한몸으로 기도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노래하며 다같이 쳐든 두 손 사이로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몇 조각, 저 멀리 보이는 색색의 바람개비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에 걸린 노랗고 파란 손수건이 흔들렸습니다. 제 얼굴에 내리쬐던 따가운 햇살마저 사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한 시간을 추억하며 그 가운데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해 남을 위해 살아있으려고 애썼던 오늘의 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Running for Sara, 사라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혼자 생각합니다. 아무도 만난 적 없는 이 소녀를 위해 오백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으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어느새 이십대 숙녀가 된 사라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우리는 달렸고 헐떡였고 웃었습니다.


오늘 밤 꿈에 사라를 만날 것만 같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살아있는 사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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