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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

인생 후반기

나이가 들수록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배운다. 하산시에 하체에 가해지는 하중 때문에 무릎이나 발목을 다치거나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렇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어렵다.


젊어서 올라가는 길이 중요했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내려가는 길이 더 중요하다. 


젊어서는 앞만 보고 올라가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저 남들보다 빨리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애를 쓰면서 놓치게 된 것, 못 본척 한 것이 많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보다는 일과 성취, 건강보다는 재물, 헌신보다는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나아갔다.


그런데 이제 내려가는 길에서 돌아보니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많다.


앞만 보고 살면서 놓친 것, 내가 망친 일,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것,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 아이들과의 시간, 해질녘에 하고 싶었던 대화, 부모님께 대한 마음 등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와 빚잔치를 요구한다.


인생 후반기,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가능하면 가볍게 내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내 몸에 새겨진 시간의 무게, 내 마음에 담긴 인생의 무게를 지고 가야 하기에 내려가는 길은 더 조심스럽다.


하지만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한 애벌레처럼, 새로운 것이 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불안보다는 나의 길을 간다는 기대와 설렘이 더 크다.


올라가는 길에서 영문도 모른채 참고 버텨야 했다면 내려가는 길에서는 인정하고 용서할 수 있다. 


뭐랄까, 이제서야 인생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위로가 된다.




'나는 길이다'하고 말씀하신 분을 바라본다. 


왜 그분이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앞장 서 가신지를, 왜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지를 알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세상에 보냈다면 내 삶이 가진 '사명'에 대해 물어본다.


그 길에서 이제는 깊어져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떠나는 길, 놓아보내는 길, 비우는 길이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 그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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