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의 마음으로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설렌다.
누구나 사랑하는 크리스마스, 성당에 다니지 않았던 어릴적 나는 산타가 있다고 믿었었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며 머리맡에 크라운 산도 한 박스가 어김없이 있었으니까!
어느 해 형이 나에게 '산타는 없다'고 말했다. '그럴 이가 없다'고 산도를 증거로 이야기하니 형이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에 잠자지 않고 기다려보면 알게 될거야."
크리스마스 이브, 쏟아지는 잠을 가까스로 참으며 버티고 있는데 미닫이 문이 스스륵 열리며 누가 들어왔다. 두렵고 놀라운 마음으로 실눈을 뜨고 보니 엄마였다. 엄마는 조용히 산도 한 박스를 머리맡에 놓고 방을 나갔다. 형은 킥킥 웃었고 나는 서글펐다. (그때는 절에 다니셨던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도를 사셨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짠하다.)
작년 크리스마스는 잊을 수가 없다. 갑자기 늘어난 코로나19로 인해 성탄을 며칠 앞두고 군위성당도 미사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서둘러 아기 예수님은 신자들과 함께 구유에 모실 수 있었지만 막상 크리스마스 성야가 되었지만 아무도 없는 제대 구유 앞에서 예수님 탄생을 혼자서 축하할 수 밖에 없었다.
밤새 내리던 눈이 조용히 성당을 하얗게 덮으며 '괜찮다, 괜찮다'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다가왔다. 어떻게 대림시기를 보낼까 생각하며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군위성당 주임신부로 맞이한 첫 해 크리스마스에는 대림시기 내내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매일 10-15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썼다. 성탄을 기다리는 맛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대구 ME 발표부부들을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 먹었다. 매일 한 부부를 기억하며 아침 미사를 봉헌하고, 하루 중에 그 부부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저녁에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가장 작은 교회인 가정을 지키고 키워나가기 위해 헌신하는 대구 ME 스물 세 발표부부들을 기억하며 그렇게 대림시기를 기도하며 보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떠해야 할까? 나는 자주 예수님을 임신한 성모님을 생각한다. 각중에(갑자기)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듣고 '말씀하신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하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아직 뭐라 말할 수 없는 답답하고 불안한 어느 날 태중의 아기가 발길질을 했다고 생각해보라.
태아의 발길질을 느끼며 성모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롭고도 은혜로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달을 예수님과 하나로 지내다가 이제 얼마남지 않은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대림시기는 아기 예수님의 출산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성모님의 몸과 마음을 닮아야 하는 때다. 늘 태중의 아기를 기억하고 말과 행동에 조심하면서 아이의 대한 사랑으로 기도하는 시간이다. 부족하지만 나 역시 사제로 나의 양떼를 품에 안고 대림시기의 매일을 보내고 싶었다.
어느 때보다 어둡고 불안한 성탄절이다. 2년째 맞이하고 있는 코로나 19 세상은 사람을 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게 만들며, 사람사이 마음의 거리는 자꾸 멀어져만 가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온정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세상에 빛과 평화를 가져다 주시는 하느님, 아기 예수님의 현존이 절실하다.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새벽 빛을 이길 수 없으니 효성으로 빛나는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밝혀 주시기를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도한다.
Merry Christmas!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더 많이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