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을 강요당하는 이의 질문
"10대에게 나이는 벗어나고 싶은 구속복일 테고, 20대에게 나이는 날개와도 같고, 30대에게 나이는 부담스러운 무게이겠지만 40년쯤 살고 나면 나이는 그저 흘러가는 세월일 뿐이다. 인간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강물 같은 세월." 한수희
사람들이 자꾸 각인시켜 주는 오십을 바라보며 나는 묻는다. 도대체 나이는 먹는 것일까, 드는 것일까?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번은 아침으로 나오는 떡국을 먹으면서 그때마다 나이를 먹었으면 나는 200살도 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난 떡국을 좋아한다.)
못 먹던 시절에는 ‘진지 드셨습니까?’ 혹은 ‘엄마, 나 타이틀 먹었어!’라고 말했었다. 먹어서 결핍을 채우려하던 시절은 이제 너무 많이 먹어서 어떻게든 비워내야 하는 시절에 밀려나고 있다. 자꾸 먹기만 하면 살이 찌고 배가 나오는 까닭에 한때는 중년 남성의 풍만한 인격으로 여겨지던 똥배가 이제는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나이 먹는 일은 욕 먹는 일처럼 피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이는 드는게 맞다. 든다는 것은 동사 '들다'의 활용형으로 자동사다. 그 말은 억지로 나이가 드는게 아니라 거저 나이가 더해진다는 뜻이다. 마흔 이후에는 가만 있어도 나이가 온다. 늦추려하면 더 빨라지고 막아도 안된다. 좋든 싫든 나이가 많아진다.
예전에는 뭐든 많은 것이 좋았는데 이제는 아니다. 특히 나이가 많아지는데는 애매함이 있다. 도대체 나이는 얼마가 되야 많은지 알 수 없다. 스물 젊은이는 초등학생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마흔 아저씨가 보기에는 애송이일 뿐이다. 이같은 상대적인 나이 많음 때문에 우리는 자주 싸운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은게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듯 생각하고 나이가 어리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긴다.
나이는 드는게 맞다. 여기서 든다는 것은 흘러가는 세월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강물 같은 세월에 어떻게든 발맞추어 함께 가려는 노력이다. 그제서야 인간은 철이 든다. 자신은 광활한 세계에서 별 볼 일 없는 존재이며, 하나뿐인 인생도 평범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이보다 먼저 들어야 할 것은 철이다.
또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보다 큰 어떤 것에 '가입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이에 걸맞는 품격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나이가 요구하는 것들을 인내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고, 밤에 자주 화장실을 가고, 몸이 쉽게 피곤해지는 노화의 과정에 소속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은 매년 신규 가입 축하(?) 메시지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것이 존재에 '배는 것'이다. 등산길에 서 있는 나무에 사람 손길이 배는 것처럼 오랜 시간 만지고 바라보고 인내하면서 존재에 묻는 흔적이다. 섣부른 사람이 익어가는 것이며 부족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으로 자신만의 무게를 가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노사연이 '바램'에서 노래하는 것이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실은 나이를 먹든, 들든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떻든 나이는 많아지니까. 그럼 왜 이런 생각을 하냐면, 아마 나이 자체가 염려나 두려움을 몰고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다.
'놀이에 몰입한 아이는 재미마저 잊고 진정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묻지 않는 법'이건만, 나이를 묻고 있는 나는 아직도 새삼스러운 나이와 서툴게 놀고 있는가 보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말인가, 든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