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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돼지에게나 줘 버려라!

행복이 목표가 아닌 삶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배부르고 웃고 인기있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이 불행하다고 한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5-26)


오히려 예수님은 굶주리고 울고 미움받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너희는 행복하다!"(루카 6,21-22)


왜 그럴까?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는 말로 잘못 번역된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원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 (It is better to be a human being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


불만족한 인간이나 소크라테스가 무엇 때문에 만족한 돼지나 바보보다 나을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돼지나 바보가 되더라도 기꺼이 만족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가!


오늘 예레미야 예언자는 말한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예레 17,5).


배부르고 웃고 인기를 찾는 돼지나 바보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다. 그들은 배부르고 웃고 인기를 얻는 것 외에 더 바라는 것이 없다. 그들은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하느님이 필요없다.


하지만 삶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배부르면 재미있는 일이 생각나고, 웃다보면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고, 인기가 있다 싶으면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삶은 짧기에 배부르고 웃고 인기 있기만을 바라기에도 모자랄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 때문에 기꺼이 굶주리고 울고 미움을 받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들은 현세가 아니라 주님을 선택하는 자,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이 아니라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은 시편 1편은 모든 시편 150편의 시작으로 가장 핵심적인 주제인 두 가지 이미지를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 되리라.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시편 1편)




행복과 불행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행복을 쫓고 불행을 멀리하고자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다.


나만을 위해 지금 배부르고 웃고 인기있기를 바란다면 만족한 돼지나 바보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라 믿고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행복은 돼지에게나 줘 버려라.


대신 유한한 인생에서 나보다는 남을 위한 헌신이 가져다 주는 보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굶주리고 울고 미움을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진정한 삶이 가져다 주는 고통 때문에 불만족한 인간이나 소크라테스가 추구하는 삶이다. 


그들이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적어도 삶이 행복과 불행에 따라 결정되지 않기에 행복이 목표가 아니다.


배부르고 웃고 인기 있으면서 그럴 수도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인생은 없다.




한가지만 덧붙이겠다.


나같은 사제나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이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 2독서에 나온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믿는 이라면, 오늘 배부르고 웃고 인기를 얻기 위해 예수의 이름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그런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 돼지나 바보보다 더 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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