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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800리 자전거 여행

영산강 섬진강 자전거길 종주

여름방학을 맞이했지만 어디도 가지 않고 매일 출근해야 하는 학교생활은 생각지 못한 도전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나도 나를 필요로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동기 신부가 산티아고 길을 떠나 매일 자신이 걷는 길, 만난 사람들,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를 페북에 올리고 있다. 순례길에서 나와 전화도 몇번 주고 받았다.


마음 한편에선 부럽고 그렇지 못한 내 처지가 아쉽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나의 여름을 도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산티아고를 찾아 걷고 싶었다.




지난 여름 <바프와 함께 제주도에서>를 위해 하양에서 출발해서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었다.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고 제주환상자전거길을 종주했다. 그덕에 내게는 '국토종주 자전거길 여행'이라는 패스포트(Passport)가 생겼다.


지난 학기 중에 낙동강 상류 자전거길을 틈틈이 타서 국토종주에서 가장 긴 낙동강 자전거길(389km)을 마무리했다.


나의 산티아고는 올해 안에 국토종주 자전거길(1,853km)을 종주하는 것이다.


그 시작으로 주말 1박 2일 영산강(133km)과 섬진강(149km)을 엮어 '남도 800리 자전거 여행'을 준비했다. 일단 하양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목포 영산강 하구둑에 차를 세우고 영산강 자전거길을 종주하고, 1박을 한 뒤 섬진강 자전거길을 마치고 광양에서 버스를 타고 목포로 돌아오는 계획이었다.


길을 떠나기 전에 누구나 느끼는 걱정과 두려움이 내게도 있었다. 만일 자전거가 고장이 나면 어떡하지, 체력이 안되서 종주를 못하면, 사고가 나면 올 사람도 없는데 등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7월 9일 토요일 아침 6시 20분 영산강 하구둑에서 첫 페달을 밟았다. 영산강은 넓고 푸근한 어머니 같았다.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강은 넓은 곡식 들녁과 함께 풍요로웠고 길도 좋았다. 그동안 자주 블로그에서 읽었던 악명 높은 우레탄 자전거길이 정비되어 깨끗하고 편안하게 무안, 나주로 이어졌다.


광주에 들어서니 도시를 가로지르는 자전거길이 오랫동안 정비가 되지 않았는지 붉은 자전거길이 깨지고 갈라져 있었고 무엇보다 지루한 길이 힘들었다.


담양에 들어서자 자연이 나를 반겼고 한번도 보지 못한 신선한 대나무 자전거길이 펼쳐졌다. 담양 죽녹원의 경치와 영산강은 과연 명품 그 자체였다.


담양 영산강 자전거길

그런데 영산강 자전거길 최악의 코스는 메타세콰이어 인증센터에서 마지막 인증센터인 담양댐 사이에 깔린 우레탄 길이었다. 자전거길을 보행자에게도 좋게 만들려는 뜻으로 깔았을 우레탄길은 이불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불편 민원이 하도 많아 바로 옆에 자전거길을 공사 중에 있으니 다음에 오는 분들은 그 길을 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영산강과 섬진강 자전거길은 이어져 있지 않다. 섬진강을 만나려면 국도로 30킬로미터를 가야하는데 133킬로미터 영산강 자전거길을 종주하고 나니 더 나아갈 힘이 없었다.


그래서 점프(Jump)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점프란 종주를 마치는 지점에서 다음 시작점까지 차로 자전거와 라이더를 운송해 주는 것이다. 여럿이 가면 비용을 아끼겠지만 한 여름 뙤약볕에 미친듯이 자전거 타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1인 5만원을 지불하고 점프차에 올랐다.


차 주인은 친절하게 숙소까지 안내해주고 태워주겠다고 했다.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였지만 30분 뒤에 차에서 내리니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 같은 건물에서 할머니 한분이 나오는 것이 수상했다.


할머니는 손님보다 나를 소개해 준 차량 주인을 더 반갑게 맞이하며, '밭에 가서 청량고추 좀 따갈래요?'하고는 그를 데리고 밭으로 갔다. 나는 멀뚱히 서서 청량고추에 팔려온 것을 알았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 모텔 냉장고에는 누가 쓴 생수병에 채워 놓은 물 두병, 여러분이 생각하는 어떤 곳보다 더 열악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식사는 모텔 앞 식당 한군데 뿐이고(이곳도 모텔 주인과 친척 관계라고 들었다) 주변에는 가게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첫날 자전거길 여정을 마치면서 향심기도를 바쳤다. 내가 선택한 거룩한 단어는 '동행'이었다. 여행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는 뜻으로. 


향심기도 후 40일 수련 묵상을 읽는데 이런 글이 있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여정의 동반자이시니."

 



다음날 새벽 동틀 무렵 조용히 길을 나섰다. 솔직히 주인 할머니와 좀 이상해 보이는 아들이 영화 <올드보이>에서처럼 방에 가스를 넣어 나를 골아 떨어지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이상한 상상도 했었다!


섬진강은 안개에 싸여 그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영산강이 어머니 같았다면 섬진강은 이십대 여인처럼 세련되고 예뻤다. 여러개의 다리를 건너며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놀랍고도 다양한 멋이 있었다.


지리산 웅장한 산자락 아래 맑은 물과 계곡, 그리고 멋진 나무들이 환상의 자전거길을 펼쳤다. '감성의 '이라 불릴만했다.


섬진강 자전거길 모습과 붉은 자전거 다리, 향가터널

자전거 여행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생리적 현상이다. 모텔에서 나오기 전에 볼 일을 봤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데서나 급한 일을 볼 수 없으니 화장실을 애타게 찾으며 달리는데 저 멀리 화장실이 나타났다.


반갑게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휴지가 없었다. 나도 짐을 최소화했기에 휴지를 챙기지 않았다. 잠시 하나뿐인 마스크를 쓸까 고민했었지만 나중에 목포가는 버스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주변에 있는 수풀에서 호박같은 잎을 다섯장 땄고 일은 적당히 마무리되었다. 가장 원초적인 순간에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잡초라 부르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잡초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섬진강 자전거길에는 어려움이 한가지 있다. 출발하면서 간단하게 에너지바를 먹고 떠난 뒤에 어떤 곳에서도 보급을 할 곳이 없었다. 체력은 떨어지는데 편의점이나 식당이 전혀 없어 힘이 많이 들어 나중에는 탈진까지 걱정했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75킬로미터를 달린 후, 가정역 마을에서 마침내 가게를 찾을 수 있었으니 누구나 전날 보급 준비를 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상한 모텔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맛의 도시 목포에서 늦은 만찬으로 삼계탕을 먹고 남도 800리 산티아고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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