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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아고 종주

나의 두번째 산티아고

올들어 가장 더운 여름날 <한티가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실 걷게 된 이유 중 하나는 2학기 대구가톨릭대학교 학생들의 쉼과 자존감 회복을 위한 휴(休) 2.0 프로그램 계발을 위해서였다.


한티가는 길 45.6킬로미터를 걸으면서 학생들에게 자연속에서 자신과 삶의 방향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제들이 체험해야 했기에 세명의 사제가 걷고 두명의 사제가 보조하기로 했다.


가장 단풍이 멋있을 10월의 마지막 주간에 있을 프로그램을 8월 삼복더위에 답사하게 된 것은 다섯명의 사제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는데 그것은 바보같은 생각이자 최고의 결정이었다.


한티가는 길은 한국의 산티아고를 닮았기에 <한티아고>라 이름 짓고 2박 3일 동안 걸었는데 다른 순례자는 볼 수가 없었다. 너무 더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까지 내려 마치 물속을 걷는 것 같았다.


3구간 쌀바위에서 금낙정 가는 길

매번 산길을 오를 때는 땀을 한바가지씩 흘렸고, 어떤 구간에서는 날파리의 집중공격을 참으며 걸어야 했고, 하마터며 밟을 뻔했던  발만한 두꺼비와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지역을 지날 때에는 아찔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기는 동료신부가 열사병에 걸린 것 같다고 했을 때 순례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다시 일어나 걸어주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한티아고를 종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황금마차' 덕분이었다. 군대 매점인 PX가 없는 전방 군부대에 먹을 것을 잔뜩 싣고 나타나는 트럭을 군대에서 황금마차라고 부르는데 우리에게는 두 사제가 학생들의 긴급상황을 대비해 차량진입로를 확보하는 차량이 황금마차가 되어주었다. 탈수 직전에 마시는 아아, 뽕따(아이스크림), 초코파이 등을 가진 황금마차를 어찌 기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첫날 저녁 발에 잡힌 물집을 터트려 주며 우리가 걸을 수 없다면 학생들도 올 수 없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가자고 마음을 모았다.


1구간 바람쉼터 가는 길

특별히 한티아고의 가장 어려운 코스인 둘째날 고갈된 체력을 정신력으로 채우며 가산산성을 향해 걸어갈 때는 마침 그날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이어서 예수님과 함께 타볼산으로 오른  제자들처럼 우리도 점점 변모되었던 같다.


원당공소에 도착해 '여기에 텐트 셋을 치고 그냥 쉽시다!'하는 말을 농담으로 주고 받으면서도 우리는 조금씩 박해시대 어둠을 타고 밤길을 걸어 대축일 미사 첨례를 위해 목숨을 무릅쓰고 이 길을 걸었던 신앙 선조들의 마음을 새기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등산스틱 (원당공소에서)

무엇보다 순례를 시작하는 가실성당에서 각자가 뽑은 무명순교자 메달은 고유번호가 있는데 한티성지에 묻힌 순교자 무덤 번호였다.(한티성지에는 37기의 무덤이 있는데 나는 27번을 뽑았다.)


과연 살아서 이 길을 걷고 있는 나는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었고 신앙 때문에 목숨까지 바친 분의 무덤 앞에서 어떤 기도를 바칠까 길을 걷는내내 묻게 되었다.


둘째날 오후 늦게 마지막 힘을 다해 한티성지를 향해 걷고 있을 때 우리는 귀인을 만났다.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님께서 한티에 일이 있어 오시다가 우리와 마주친 것이다. 대주교님께서는 우리를 격려해 주시고 맛있는 저녁을 사 주셨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 학생들을 초대하는 한티아고 홍보 동영상에까지 참여해 주셨다. 큰 힘이 되었다.


셋째 날 주일 아침, 우리는 순교자 무덤을 향해 떠났고 그 앞에서 각자가 가진 지향으로 침묵 기도를 바쳤다.


마지막 스탬프인 '한티마을 사람들'을 찍고 나자 우리는 한티가는 길 스탬프 북을 처음 받았을 때 적혀 있었던 질문, '그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작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티가는 길 완주인증서

8 삼복더위에 우리 다섯 사제들은 예수님을 따른 신앙 선조들의 발길을 따라 한티아고를 걸으며,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신앙의 의미를 미약한 땀과 육만의 발걸음으로 몸과 마음에 각인시켰다.


이제 시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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