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필요한 건 한가지뿐

연중제16주일

바쁜 일요일 하루를 보내고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피곤하고 지쳤는데 내일 다시 시작될 월요일이 짜증나고 두려운 것은 아닌가요? 


아마 대부분은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을테고, 특별히 기억에 남을, 혹은 뿌듯한 느낌을 주는 일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현대인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까요?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오늘이 달랐을까요?


인생의 우선 순위를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도 알고 있습니다. 가족, 건강, 행복, 사랑 같은 것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외의 것들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돈, 집, 여가생활, 성공 같은 것들이겠지요. 이런 것들은 쾌락을 가져다 주기에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쾌락은 꼭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자기 만족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쾌락은 혼자 오지 않습니다. 쾌락을 찾으면 찾을수록 염려와 걱정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르타를 생각해 봅시다. 아주 귀한 손님인 예수님께서 집에 오셨으니 멋진 음식을 대접하고 편히 쉬게 만들어 드림으로써 자신이 생각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이루려 합니다. 예수님 접대와 이를 통한 자기만족,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의 인정은 마르타가 추구하는 쾌락입니다. 그 때문에 마르타는 정신이 없고 가만히 있는 동생 마리아가 미워지고 염려와 걱정이 넘쳐납니다.


저는 이번 여름 시간 날때마다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고 있습니다. 장거리 투어용 미니벨로에 많은 물건을 가져가기도 어렵지만 모든 것은 결국 짐이 됩니다. 가장 필요한 것만 챙기고 '필요할 것 같은 것'은 챙기지 않습니다. 없으면 안될 것 같은 염려와 걱정은 신경쓰지 않고 과감히 없이 떠납니다. 그러고나면 다시 확인하게 되는 깨달음은, 걱정한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많은 염려와 걱정에 쌓여 있다면 인생 여정에서 필요하지 않은 너무 많은 것을 쾌락을 위해 지고 갈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참새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참새는 끊임없이 고개를 움직이고 날아 나무에 앉는데 이 모습이야말로 100% 살아있는 모습입니다. 참새가 지쳐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거나 무기력하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본 적은 없을 것입니다. 참새가 100% 살아있는 이유는 오직 '생존' 하나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번식하는 것 외에 다른 것들이 없으니 참새는 생존이라는 단순한 삶을 온전히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불필요한 많은 것들을 줄이고 좀 더 본질적인 것들, 반드시 집중해야 할 것들에 마음을 쓰면 더 살아있게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100%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마리아를 봅시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분 말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고 있고, 그 때문에 분주함이 아니라 고요함 가운데 그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하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야말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고, 우리가 찾아야 할 진리이고, 마침내 우리가 그분과 하나되어야 할 생명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 생명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수많은 것들이 아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일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쁜 소식입니다.


제 친구 수녀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같은 성당 동기로 지내다가 나중에 저는 신학생으로 친구는 수녀님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우리는 같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영적 여정의 동무가 되었습니다. 수녀님은 저보다 빨리 종신서원을 하고 첫 소임을 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암에 걸렸습니다. 


수녀님께서 암 투병하던 3년은 제게도 힘든 시기였습니다. 수녀님 생명이 소멸되어 가고 있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수녀님께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부님, 제 인생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암에 걸린 일이야말로 제게 가장 소중한 일이 되었습니다. 암 투병을 하면서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분을 더 잘 알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암은 제 성소입니다."


결국 수녀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생명은 잃어 버렸지만 예수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생명은 얻으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한 수녀님께서는 고통 중에서도 그것을 기쁘게 껴안으셨습니다. 저는 수녀님과 함께 걸으며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라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세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이 아닌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키우기 위해 그들을 극진하게 대접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물을 줍니다. 아들, 바로 생명입니다.


주일 저녁 미사에 오신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한가지는 바로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찾고 예수님의 살과 피로 힘을 얻고 성령과 함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생명, 성체성사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일요일 늦은 밤,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무겁지만 놀라운 생명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그것이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이며 가장 필요한 한가지입니다. 그것을 택하셨으니 복되십니다. 빼앗기지 마십시오.

매거진의 이전글 Keep forgiv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