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부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름다움을 쓰다

캘리그라피를 배우다

지난 오월 우리 대학교에 계신 류상애 아녜스 수녀님께서 만드신 달력을 보다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천천히 자라더니 '나도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다'는 소망에까지 이르렀다.


류 아녜스 수녀님 작품

아녜스 수녀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셨고 교목처에 계신 다른 수녀님들도 초대하셨다. 그래서 6월 초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일과 후 교목처에서 '화목하게' 캘리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글도 제대로  쓰는 바보손을 가진 내가 살아있는 글씨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배우는 마음으로 수녀님께서 가르쳐 주시는대로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줄을 곧게 긋는 연습을 했고, 그 다음에는 한글의 모음과 자음 쓰기, 이어서 짧은 단어 쓰기로 이어지는 내내 늘 새로운 도전이었다. 곧 방학이 되었지만 캘리 수업과 연습은 더운 여름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크게 다가왔다.


나의 캘리들

마음에 담긴 수많은 것을 음악이나 미술, 글로 옮기려 할 때 우리가 깨닫는 것은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것은 작품을 통해 마음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마음의 온도까지 담아내는 일이기에 참 어렵다. 쓰는 사람의 마음을 보는 이가 느낄 수 있으려면 적어도 쓰는 이의 마음부터 성실하고 진실해야 한다.


오래전에 아녜스 수녀님께서 나를 위해 써 주신 서품성구를 내가 직접 쓰면서 말씀을 의미있고 살아있게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님을, 그 때문에 말씀의 가치를 다시 새길 수 있었다.


두 달 정도 연습을 했을 때였다. 수녀님께서 명동성당 1898 갤러리에서 9월에 있을 "제3회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정기회원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셨다. 물론 처음에는 '말도 안됩니다', '선생님이 출품하는 곳에 어줍잖은 학생들이 참가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하고 말씀드렸지만 마음 한편에는 더 열심히 쓰기 위해서는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쓰다>

이것이 전시회 주제다. 내게는 무엇이 아름다움일까, 그리고 아름다움은 무슨 역할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도로시 데이(Dorothy Day)가 사랑했던 도스토옙스키의 글이 떠올랐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Beauty will save the world).


아름다움은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일깨우며 우리로 하여금 선하고 좋은 것을 열망하게 하고 마침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다.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음악, 조카, 기도, 자전거, 미사, 달리기, 십자가, 산, 말씀이다. 그 아름다움은 나를,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그런 마음으로 아름다움을 캘리에 담아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수녀님의 도움으로 색을 넣어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나의 첫 캘리그라피 작품이 완성되었다. 내 안의 열기에 설레인다.


첫 작품: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반백년을 살아보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