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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을 살아보니

셀프 생일 축하

오늘로 반백년을 살았다. 다른 말로 하면 백신 4차 접종 대상자가 되었다.


보통 사제는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나이 많은 신자들을 사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이에 맞지 않는 책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백년을 살고나니 굳이 나이를 말하지 않고 숨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많다고 나이값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철없을 수야 없지 않은가.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나이로서 중요할 뿐이다.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쓴 연세대학교 김형석(1920년~) 명예교수는 말한다.


"백년을 살아보니 아무리 행복해지고 싶어도 행복해지기 힘든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으니까요. 가령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과연 행복하게 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물건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불행해지고 말더군요.”


소유를 행복으로 생각하고 더 많은 물건, 더 높은 지위를 꿈꾸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솔직히 거기서 행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 명예욕은 기본적으로 소유욕입니다. 그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목이 마릅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항상 허기진 채로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하려면 꼭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만족’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 내가 처한 환경,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행복해지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 두 번째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인격을 못 가집니다. 인격이 뭔가요. 그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입니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채움으로써가 아니라 비움으로써 자신의 그릇을 키우고 그 그릇 크기만큼 나와 남에게 도움이 되는데 우리는 항상 채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김형석 교수의 이어지는 말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내가 연세대 교수로 처음 갈 때 30대 중반이었어요. 그때는 환갑이 되고 정년이 되면 내 인생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인생을 두 단계로 봤어요. 30세까지는 교육을 받고, 나머지 30년은 직장에서 일한다. 그럼 인생이 끝난다...(하지만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행복한 건 60세부터였어요. 내가 살아보니까 그랬습니다. 글도 더 잘 쓰게 되고, 사상도 올라가게 되고, 존경도 받게 되더군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제일 소중한 시기가 언제일까요. 열매 맺을 때입니다. 그게 60세부터입니다. 나는 늘 말합니다. 인생의 사회적 가치는 60부터 온다.”


그의 말을 빌면 나는 열매맺기 위해서 아직도 십년의 시간을 더 노력해야 한다. 한편으론 60에 어떤 모습의 나를 만나고 싶은지 사뭇 궁금해진다. 중요한 것은 노 교수의 마지막 당부의 말이리라.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따라서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때는 몸이 정신을 따라옵니다.”


나는 백년을 살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많은 열매를 맺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보람되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이 늙지 않도록 새로운 것을 찾아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젊어서는 성공하기를, 사람들의 눈에 띄어 칭송받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그릇이 참으로 보잘 것 없음을 안다. 그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와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한보따리인데 무언가 도움이 된 것을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다. 나를 세상으로 보낸 하느님 아버지께 죄송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받은 은총과 사랑은 놀랍기만 하다. 훌륭한 부모님이 계시고 우애 좋은 형제들, 그리고 살면서 만난 '의미있는 타인(Significant Others)'은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받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감사할 뿐이다. 


반백년을 살고나서 생긴 바램이 하나 있다면 남은 생을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내 한 사람 바꾸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렵겠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을 조금씩 채워가며 이웃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내 모습이 되는 것, 그것은 참으로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기도할 수 밖에...이제서야 그리스도인이 된 것 같다.


특별히 오늘 하느님께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각난다. 8월 삼복더위에 나를 낳느라 고생하셨고, 몇 번이나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었는데, 오늘은 어머니의 긴 수다가 그립다.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오늘 성무일도 시편 8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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