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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是是非非)

7월 10일, 흐림

방랑시인 김삿갓이 쓴 <시시비비是是非非>라는 시(詩)가 있다.


是是非非非是是(시시비비비시시)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꼭 옳지만은 않고

是非非是非非是(시비비시비비시)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是非非是是非非(시비비시시비비)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是是非非是是非(시시비비시시비)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역자 정민호는 이것을 이렇게 풀이한다. 어느날 김삿갓이 시장을 지나가다 장사꾼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는데 아무것도 싸울 일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잘잘못을 따지고 있었다. 이 사람 말을 들으니 이 말이 옳고, 저 사람을 말을 들으니 저 사람 말이 옳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옳고 그름이 없는 것을 가지고 싸우고 있으니 그것이 시비였다.


결국 옳고 그름은 처음부터 없다. 보통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 해야 하지만 김삿갓은 옳은 것이 그릇될 수 있고 그른 것도 옳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사임을 알았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따지는 그 자체부터가 옳은 것이 없다는 논리다.


옳다고 철썩같이 믿고 따르던 것이 어느새 그른 것이 되고 그름을 따르다가 옳음을 따를 수도 있다. 가능했던 것이 불가능해지고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장자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하늘의 이치를 따르라고 했다. 나도 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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