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부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여행의 이유

일상과 헤어질 결심

지난 여름방학 때 전라도 완주로 여행을 떠났다.


오성한옥마을에 있는 소양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한 번쯤 멈출 수 밖에'라는 여행 프로그램에 가수 이선희와 방송인 이금희 씨가 와서 하룻밤을 머물렀다는 바로 그 고택이었다.


오성한옥마을은 깊고 깊은 산속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었는데 지역주민들이 한옥을 보존하고 허물게  한옥 고택을 옮겨와 재건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곳이다.


소양고택 대문, 책방 Flicker, 카페 두베


바람과 구름만이 아는 산골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한옥마을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닮고 있는 듯 했다.


바람, 개울 물 흐르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풍경 소리와 어우러지면 마시는 차 한잔, 펼치는 책 한구절이 시와 노래가 되었다.


고택의 바람


환대의 차를 마시며 투숙객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책방에 들렀다. 한권의 책을 빌려 고택 마루에 누워 읽고 싶었는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영화 <헤어질 결심>의 각본집이었다.


180년도 더 된 그 옛날 조선 원님의 관사였던 제월당 마루에 누워 '헤어질 결심'을 읽으니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밤이 오고 달이 떠오르자 고요함 속에 소양고택은 빛을 발했다. 현대식 건물에 익숙해져 조금은 불편한 한옥이지만 풍경이 가져오는 따뜻함, 공간이 주는 정감은 무엇과도 비할바가  되었다. 그렇게 고택에서의 밤이 깊어갔다.


소양고택의 밤풍경


오성한옥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BTS 성지가 있다. 오성제라는 아름다운 저수지에  있는 한그루 소나무가 바로 BTS 와서 화보를 찍은 곳이기에 아미들에게는 성지라고 한다. 나도 잠시 아미가 되어  아름다움을 느껴본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명동성당 1898 갤러리에서 열리는 <아름다움을 쓰다> 전시회 오픈식에 참석하고자.


지난 여름 학교에 계신 류상애 아녜스 수녀님으로부터 캘리그라피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전시회에 한번 내 보실래요?'라는 수녀님의 질문에 아무 생각없이 예라고 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양가는 길은 설레었다. 오랜만에 타는 기차도 좋고 전시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도 선하고 아름다운 분들이었다. 자신을 드러내고자 애쓰는 작가가 아니라 기도하고 나누고 봉사하는 사람들이었다.


만일 작품이 판매되면 그 수익금은 모두 '명동밥집'에 기부된다고 한다. (회장님께서 작품이 팔리도록 꼭 선전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전시회 오픈식을 마치고 명동성당을 둘러보고 천천히 밤길을 걸어 서소문성지로 향했다. 서울을 여러번 다녀갔지만 서울역에서 가까운 곳에 순교자들의 성지가 있는지는 몰랐다. 그곳에서 기도하시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이 선하다.


<아름다움을 쓰다> 전시회, 서소문 성지


여행의 이유는 뭘까?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놀랍고 재미있고 생생한 어떤 것을 마주하면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달라보인다. 


일상과 헤어질 결심을 종종 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시멜로같은 페이스 메이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