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부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앙코르와트 걷는 법

신이 되고자했던 인간의 길

인간이 지상에서 꿈꿀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손에 넣으면 천상세계를 넘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절대권력이 영원하기를, 죽어서도 남겨지기를 바라며 지상에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막강한 왕이 되면 권력을 과시하면서 더 나아가 신만이 누릴 수 있는 불멸로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웅장한 사원을 짓지만 결국 남는 것은 폐허 뿐이다.


인간은 자연을 넘지 못한다. 그 길이 앙코르와트, 앙코르톰, 그리고 타프롬사원으로 이어진다.




앙코르와트로 가는 여정은 멀었다. 푸삿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 바탐방에 들렸다. 지목구 주교좌성당을 둘러보고 교구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3시간을 달려 씨엠립에 도착했다.


마침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펍 스트리트(Pub Street)로 나갔다. 과연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를 잊고 한해를 떠나보내며 왁자지껄하게 모여 있었다. 짧은 산책으로 하면서 '아듀(Adieu) 2022!'를 마음으로 외쳤다.



새벽 6시 아침식사를 하고 앙코로와트로 향했다. '도시(Angkor)'와 '사원(Wat)'이 결합되어 '사원들의 도시' 혹은 '가장 중요한 사원'은 거대한 해자로 둘러싸여 지상과는 구분되는 천상세계처럼 보였다. 불교의 일주문이나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성수를 찍는 것처럼 긴 다리를 건너 마침내 앙코로와트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힌두교 신화에 따라 도시를 지키는 일곱 머리를 가진 뱀인 '나가'상이다.


왕의 길을 따라 사원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양쪽에 큰 도서관을 만나고 연못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중앙 사원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부조와 압살라 여신상을 뒤로 하고 사원의 중심에 섰다가 3층 천상계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직 왕만이 오를 수 있었다는 중앙성소탑을 가파른 계단으로 올랐다. 마침내 천상계에 올라 앙코르와트를 사방으로 바라보면 어떤 한 인간이 꿈꾸었던 이상향이 어땠을지 짐작하게 된다.


천년이 지나도 웅장함으로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는 중앙성소탑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변함이 없었다.



가장 잘 보존된 힌두교 유적지 앙코르와트를 떠나 앙코르톰으로 들어갔다. '크다'는 뜻의 '톰(Thom)'을 담은 앙코르톰은 앙코르와트 이후에 세워진 불교중심의 거대한 도시다.


이곳도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작은 부처님 얼굴들 위로 거대한 부처님이 나타난다. 앙코르톰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을 부처라 믿었고 자비로운 '바이욘의 미소'로 바이욘 사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바이욘 사원은 많은 곳에 붕괴가 일어나 곳곳에 무너진 곳이 많다.


마지막으로 타프롬사원으로 향한다.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지었다는 불교사원은 이미 폐허가 되었고 벵골보리수나무(스펑나무)와 같이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건축과 자연이 하나가 된 신비스러운 나무사원으로 보인다.



앙코르와트에서 또 다른 캄보디아를 만났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웅장한 건물과 구조, 놀라운 석재조각들은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건축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배여있는 절대권력자의 간절함이 왠지 쓸쓸하게 보이기도 했다.


힌두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곳, 아직도 어떻게 수십만개의 돌을 어디에서 어떻게 옮겨왔는지 밝혀지지 않은 곳,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신세계에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감추어둔 깊은 꿈을 만난 듯 생경한 놀라움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폐허로 남게 될 인간의 건축물,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싱싱하게 지금도 자라고 있는 스펑나무는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내내 위대한 이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뒤에 느끼는 허허로움으로 씁쓸했다.


지는 석양을 보며 바이욘 사원의 원숭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바나나를 먹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이 없으면 나도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