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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자랑하고 싶은 사람에게(연중4주일)

모두가 찾는 행복, 그런데 그 행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행복이란 물질적 풍요가 바탕이 된 안정감이라 하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과 성공이라 하고, 어떤 이는 삶에서 느끼는 보람이라고 합니다.


행복(幸福)이란 단어를 살펴보면 다행 행(幸)과 복(福)이 합쳐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된 좋은 운수'라고 국어사전은 풀이합니다.


그런데 운과 복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복은 하늘에서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을 빌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은 근본적으로 복을 바라고 기도하는 '기복(祈福)' 신앙입니다. 물론 기복신앙에만 머물게 되면 내세의 물질적 행복과 이기심에 사로잡히게 되겠지만 기복적이지 않은 신앙은 없습니다.


사제는 하늘로부터 복을 기도하는 '빌어먹는 사람'입니다. 신자들에게 복이 내리도록 '강복(降福)'하는 것을 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강복을 받는 신자들은 서로를 '축복(祝福)'함으로써 믿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하게 됩니다.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있다면 이웃과 나누어야 하겠지요. 복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주어지는 선물이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행복이란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행복을 자신의 당연한 소유물로 생각한다면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세속적 기준으로 말해 여러분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거나 아버지가 대기업 사장이거나 명문 정치인 집안 출신이 얼마나 됩니까?"(1코린 1,26 참조)


대부분의 우리는 지혜롭거나 어리석은 가운데 어리석은 편에 들테고, 강하거나 약한 것 가운데 약한 편에, 있는 것과 없는 것 가운데 없는 편에 들 것입니다.


만일 이 분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일 것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사람,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업적 앞에서 하느님이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랑이 행복이라 생각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그 반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인간, 자신의 어리석음, 약함, 없음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인간이야말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 수 있는 인간'이 되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 의로움, 거룩함과 속량이 되어 주십니다'(1코린 1,30).


부유함보다 가난함, 기쁨보다 슬픔, 이득보다는 의로움, 심판보다는 자비, 물질적 성취보다는 마음의 깨끗함,  성공보다는 평화, 모욕과 박해, 사악한 말까지 받아들일  있는 사람은 도무지 자신 안에서 자랑할 거리를 찾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Qui a Jesus a tout)." 프랑스를 떠나 이국 땅 조선에 와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갈매못에서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성 금요일에 순교하신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의 좌우명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한 자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기고 기꺼이 그것들을 내어 놓습니다. 그분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만족하고 살아갑니까? '나는 만족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 자랑이 아니라 만족하는 사람은 행복을 찾지 않습니다. 그저 감사드립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자신을 살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모든 것이 되어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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