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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 말고 찾아가자

성모자애원 신년교례회 미사

중고등학생 때 평화계곡을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랑인들이 많아서 겁이 났었지만 소피아 수녀님을 뵙고 이내 그들에게 다가가 이야기하고 함께 지냈습니다.


신학교 1학년 방학 때 한달동안 희망원에서 지냈습니다. 여러 동을 돌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떤 분이 영화같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정신없이 듣다가 돌아와 다른 신학생에게 말했는데 같은 분 이야기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 당황했었습니다. 그래도 희망원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2000년 신학교 2학년 때 대구가톨릭대학교 하양 신학교에서 처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모든 신학생이 봉사활동을 하자고 마음을 모았고 저는 나자렛집을 갔습니다. 가밀라 수녀님께서 반겨 주셨습니다.


2020년 다시 하양캠퍼스로 돌아왔습니다. 신학관에서 불과 2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교수동으로 오는데 20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시 나자렛집을 방문했습니다. 바뀐 것이 있다면 신학생이 사제가 되었고, 우기석 선생님이 원장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자렛집 가족들은 그대로였습니다. 20년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같은 모습 혹은 쇠약한 모습으로 계신 분들을 만났습니다. 무척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는 제대로 변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되돌아보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 온 고을 사람들이 우리 문 앞에 모여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고쳐주었습니다.


'모두 우리를 찾고 있었고' 우리는 헌신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열매를 맺었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를 찾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그들의 필요와 요구는 많아졌습니다. 우리를 다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 우리와 같은 일을 하면서 경쟁하는 사람들, 우리에게 전문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변화에 잘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에 만족한 결과 자만, 오만, 교만했는지 모릅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하느님께서 왜 사람이 되셨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신 것은 우리와 같아져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일부러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시려 했기 때문입니다(히브 2,14-18 참조).


우리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고 그들처럼 되었습니까? 우리는 고난과 유혹을 받기를 원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를 속죄 받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정신없이 일하면서 '시간이 없다', '사람이 없다', '돈이 없다'라고 말할 때 정작 우리에게 없었던 것은 '외딴곳에서 새벽에 바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어떻게 하면 매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늘 활기차게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그 답을 보여주십니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외딴곳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새기고 다시 일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심을 잃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찾고 있어도 우리는 그들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사명은 분명해지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이제 우리는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야 합니다. 안주하지 말고 변해야 합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두려움,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해야하는 걱정,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도 있겠지만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 앞에서 용기를 내어 한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있는 길과 같다. 사실 땅에는 본래부터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길이 생겨났다."(루신)


이제 우리는 가지 않은 길을 찾아 나섭니다. 두렵고 설레입니다. 희망이라는 길을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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