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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비처럼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대구ME 송별미사

예수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 중 한가지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원수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 생각만 하면 화가 나고 마음이 우울해지는 그런 원수, 한때는 잘해주고 참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나를 억울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그런 원수가 다 있기 마련입니다. 이 정도면 원수가 아니라 '웬수'라고 부르는게 당연할 것입니다.


원수는 대개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북한의 김정은이 원수가 되기도 하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나와 그의 어떤 인연이나 이해관계를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때는 아주 가까워 좋아하고 아끼고 심지어 사랑하기까지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움과 분노를 일으키는 나의 원수는, 그래서 나의 배우자, 가족, 동료나 직장상사, 친구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지치지 않고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의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해와 비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십니다"(마태 5,45).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차별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사랑임을 말씀하십니다. 조용히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생명을 살리는 그런 해와 비 같은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의 모습입니다.


해와 비처럼 사랑하는 것, 하지만 실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원수란 뭔가 뒤틀려있고 부족하고 나약하고 갖춰야 할 것을 못 갖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원수를 바라볼 때 '나는 괜찮은데 저 못난 사람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느낍니다. 좀 더 말하면 나는 죄가 없는데 죄 많은 저 사람 때문에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고, 나는 그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균형을 잡고 있는데 저 원수는 늘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 역시 위험에 빠집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비판했던 바리사이들처럼 자신은 옳고 남은 모자라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는 죄에 빠지는 위험입니다.


인생은 지속적인 불균형이며, 나 역시 늘 죄를 짓고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 바르게 살려는 열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죄 대신에 타인의 부족함, 남의 죄만을 직시하면 상대적으로 나는 언제나 옳고 바른 사람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원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사람이란 완벽한, 결점 하나 없는 퍼팩트(perfect)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원수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사람이란, 상처입고 부서지고 찌부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존재, 고통과 상처 가운데에서도 흙먼지를 털고 일어서는 존재, 그래서 완벽하진 않지만 온전하고 전체적인(whole) 사람일 것입니다.


사랑하려 했으나 미워하게 되고, 이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용서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한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이해하고 다시 용서하려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완전한 사람일 것입니다.




지난 4년동안 대구 ME 담당신부로서의 제 삶을 돌아봅니다. 완벽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미워하거나 분노하지 않은 적도 없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번도 자신을 '대표신부'라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고 자신을 앞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해와 비처럼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도 차별하거나 편애하지 않으며 사랑하고, 비교하지 않고 모두에게 관심을 쏟으며, 다가올 시간을 위해 꾸준히 햇볕과 비를 뿌리고자 했습니다.


강렬한 햇볕처럼 눈에 띄는 화려한 사랑보다는 따사로운 햇살이 되고 싶었고, 고개를 들면 보이는 태양보다는 흐린 날에도 그 자리에 있는 조용한 빛이 되고 싶었습니다.


쏴하고 한번에 쏟아붓는 소나기보다는 천천히 남 모르게 적시는 안개비가 되고 싶었고, 항상 눈에 띄는 장마비보다는 조용히 내리는 가랑비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과 미안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해와 비처럼 사랑하지 못했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상처주고 용서하지 못한 적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상처 준 일이 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제 몫은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이자 친구 신부님께서 여러분에게 찐한 해와 비 같은 사랑을 베풀 것이라 믿고 저는 떠납니다.


이제 행복한 발표신부로 돌아갑니다. 언젠가 어디에서 다시 해와 비로 만나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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