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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Every Day, Every Moment

사랑하는 대구 ME 발표부부들에게,


어제 송별미사에서 수십통의 편지를 받고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어떻게 답장을 쓸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나만의 러브레터를 모두에게 띄웁니다.


먼저 이 글 아래에 있는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Every Day, Every Moment)' 음악을 플레이 해 주세요. 제 마음을 담은 배경음악입니다!




ME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비서신부로 주교님에게로 향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문턱이 되어야 했고, 그림자처럼 살면서 웃을 일도 없이 자꾸 작아져만 갔습니다. 제 심장은 점점 식어가고 있었고 저는 차가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저를 풋풋한 발표신부로 안아주고 웃어주고 함께 해 준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안했던 제 삶에 여러분은 한줄기 빛처럼 다가와 저를 웃게 해 주었습니다. 제 심장이 오랜만에 설레었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한 주말 발표, 수많은 만남과 회의, 여행과 달리기,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사제생활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제게 햇살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떠나려 하니 아쉬움이 많습니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여러분은 제게 배우자와 다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낯선 곳으로 길을 나서는 마음이 이렇구나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혹여 여러분이 제가 그동안 표현한 사랑에 대한 응답이 부족해 미안하다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에 제 몫을 다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무척 행복했으니까요. 여러분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늘 곁에서 햇살처럼 비처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중은 절이 익숙해지면 떠난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여러분이 너무 편하고 좋은 지금이 바로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여러분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부로 살아가는 것, 그것도 신앙을 가진 ME 부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함께 동행한 것만으로도 벅차고 기뻤습니다. 이젠 조금 떨어져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짧지 않았던 지난 4년 열심히 사랑했으니 좀 게으름을 피워보렵니다. 갱년기도 왔으니 호르몬 탓하며 종종 여러분을 떠올리며 울기도 하면서 햇살 눈부신 어떤 날에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도 아시죠? 제가 여러분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마음으로 정말 사랑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든 날, 모든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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