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부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른 김장하

꼰대가 아닌 어른되기

젊은이들은 꼰대는 싫어하지만, 어른을 기다리지 않는 건 아니다. 자기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어른을 계속 찾고 있다. 그 열망에 대답해줄 수 있는 분이 과연 우리사회에는 있을까 하고 의심했었는데 내가 틀렸다.


우리시대의 어른 김장하를 만났기 때문이다.


19세에 한의사가 되어 경남 사천에 남성당 한의원을 설립한 김장하는 좋은 재료로 값싸게 한약을 지어 주어 일찍부터 이름이 알려져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아픈 사람들로부터 번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고 생각해 그 돈으로 작은 실천들을 하기 시작한다.


머리는 좋지만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월사금과 장학금을 나눠주고, 진주에서 시작된 차별철폐 형평운동을 살리면서 진주신문을 후원하며, 여성쉼터와 공연장을 짓는데 도와주며, 지리산 살리기 운동과 친일인명록 제작에도 후원하는 등 여러 곳에서 많은 도움을 소리 소문없이 해 왔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김주완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어른 김장하를 알기 위해 만난 100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어른 김장하로부터 도움을 받고 사회에 중요한 일원이 된 사람들이었다. '김장하 장학생'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정치, 교육, 언론 등 많은 분야에서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냥 평범한 사람들도 많았다. 어른이 말한 것처럼, 평범한 사람이 사회를 지키는 것이기에.


때론 장학금을 주어 서울에 공부하러 보낸 학생이 데모를 주도하다가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는데도 어른은 그를 탓하기보다는 그 역시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므로 격려하여 힘이 되어 주었다.


어른 김장하는 이십대부터 남을 돕기 시작해 서른 아홉에 설립한 명신고등학교를 1991년에 아무 조건없이 국가에 기부했는데 그 당시 학교는 100억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한다. 


'줬으면 그만이지' 하면서 항상 나누었던 어른의 정신에는 돈이란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썩은 내가 진동하지만 흩어 뿌리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무작정 돈을 준 것은 아니다. 어른은 누구의 말이라도 끝까지 들어주었고 때로는 돈이 아니라 격려의 말로서 어른의 역할을 했다. 종종 어른에게 무언가를 갚고자 하는 사람이 오면 '갚고자 한다면 사회에 갚아라' 하면서 자신에게 오는 공을 돌렸다.


정작 본인은 자동차 없이 늘 걸어다니고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았던 어른이 걷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김수환 추기경님의 걷는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을 알리거나 나서지 않았고, 어느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던 그분은 때로 뭐라고 하는 남에게 조차도 댓구하지 않으며 그저 삶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길을 택했고 그 길을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오고 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누구에게 베풀어도 그 흔적이 마음에 남아있지 않은 최상의 경지를 실천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70년지기 친구도 단점이 없는 삶이 단점이라고 말하며 김장하를 닮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얼마나 힘이 많이 들었을까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30년간 운영한 남성문화재단의 재산을 경상대에 다 기증하고, 2022년 5월 31일 60년간 운영하던 남성당 한약방에서 마지막 일을 마치고 나와 가족이 모여 셧터를 내리는 모습은 우리시대 어른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른 김장하는 나를 부끄럽고 고맙게 만든다. 어른의 발뒤꿈치에도 못 미치는 것이 부끄럽고, 이런 어른이 계셔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분의 마지막 말씀을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아무도 칭찬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고 그대로 봐주기만 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른 김장하>를 만나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구독자 30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