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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공포

영웅이 되는 길

고통 공포는 행복 강요만큼 강하고 끈질기다. 누구나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만큼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고통없이 행복한 것이 최상의 상태라 할 수 있는데 과연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삶은 대부분 견디는 일이다. 견디는 것은 무료함, 외로움, 자책 뿐만 아니라 타인, 괴로움, 과업 등 여러가지다. 이 모든 것에서 (잘) 살아남는 일은 쉽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경우) 지겨울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입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 나가는 노력 없이, 의지만을 혹은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생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만만치 않는 인생이라는 링 위에 오르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더 어려운 것도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견딜 체력을 갖추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 될 것이다.


달리기를 해 보면 '고통이야말로 의식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이해된다. 다리가 느끼는 피로, 호흡의 가쁨, 쏟아지는 땀을 견디며 달릴 때 살아있음을 더 선명하게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 이상이다. 오히려 기다리고 같이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학생들에게 달리기를 가르치며 마라톤을 뛰게 해 보면 두려움을 이겨내고 고통을 받아들인 후에 느끼는 카타르시스란 평생 기억에 남을 중요한 체험임을 알게 된다.


동물의 왕 사자는 평균적으로 여섯번 사냥 시도에서 한번 성공한다고 한다. 죽을 힘을 다해도 사냥 성공율은 2할을 넘지 못하고, 실패와 실패 사이는 고통을 견디는 일이 대부분일텐데 어째서 우리는 모든 경기에서 이기고 모든 환경에서 잘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왜 우리는 고통은 없어야 하고 행복해야만 한다고 믿을까.


행위예술가로 잘 알려진 마리아 울라이는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당신이 변화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뭔가를 하지만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살다보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해결책은 제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제가 알지 못하는 걸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잊지 말자. '움직이지 마라'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면 좋겠다. 때론 잘 알지 못하고 무서워하는 것 앞에서 두렵겠지만 무엇이라도 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제대로 존재한다면, 살아있다면 그 자체가 현재의 습관이나 방식에 반대하는 영웅적인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정한 레이스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싸워 이겨내는 영웅이 될 수 있다.


달리기는 영웅이 선택한 길이다.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계속해서 갈고 닦으며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달리는 모든 길이 영화 속 한 장면이 되어 평범한 사람이 비범하게 되고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녹아드는 순간이 된다. 그 순간 고통은 친구가 되고 새로운 내가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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