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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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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지금 포항 바다

드디어 방학이다!

이른 아침, 조지 윈스턴의 'Thanksgiving'을 듣는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그가 남긴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하고 감사하며.


바로 눈앞에서 파도가 조용히 꾸준히 마음을 달래주고, 시원한 바람은 내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포항 바다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다.


약학대학 가톨릭 동아리 레지오 학생 스무명과 함께 어제 오후 포항 '오도리 평화자리'에 왔다. 서둘러 짐을 풀고 오도1리 해수욕장으로 가서 시원한 바다에 풍덩 빠졌다. 튜브로 헤엄을 치고 모래사장에서 찜질을 하고 수박을 먹고 여느 대학생들의 엠티와 다를 바 없었다.


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2년 반 전에 대학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세례 준비도 시키고 성경공부도 했지만 1박 2일 엠티는 그저 대학생들끼리 가는, 교수나 신부는 함께 하기 어려운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 한켠으로는 접어 두고 있었지만 같이 하룻밤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는 어쩔 수 없었다.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엠티, 그 꿈이 이루어졌다!


평화자리 앞마당에서 고기파티를 벌였다. 해가 저무는 바닷가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술을 한잔씩 기울이며 내일 걱정없이 한 학기를 잘 보낸 우리 모두를 위해 건배를 했다.



엠티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미사였다. 바다 소리를 들으며 2층 방에 둘러 앉아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일. 그보다 앞서 마당에서 첫 고해성사 두명을 포함해서 예닐곱 학생들의 고해성사를 듣고 용기를 주며 죄를 용서하는 일은 오직 사제만이 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미리 공지한대로 각자에게 가장 의미있는 물건을 하나씩 들고 미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선물한 향수, 친구들이 사 준 가방과 키링, 첫 노트북, 집에서 늘 나를 기다리는 개 사진, 내 손목의 묵주, 예쁜 인형, 아버지가 선물한 시계, 농구부 선배가 사준 에어 조던 농구화...모두가 사랑스럽고 가치있는 선물이었다.


복음 말씀대로 좀과 녹이 쓰는 땅에 쌓아두는 보물이 아니라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하늘에 쌓는 보물에 대해 말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물건은 그 너머에 있는 인정, 우정, 사랑의 가치 때문임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고백했다.


나에게는 여러분이 바로 둘도없는 선물이라고,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보물이라고.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내 마음은 지금 포항 바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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