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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삼우미사 다음날

두번째 장례식은 다를 줄 알았다. 어머니 장례식 경험으로 아버지 장례식은 덜 당황하고 덜 슬플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모든 면에서 더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님 두 분의 장례를 맞이하고 치뤄내야 한다. 첫번째 장례가 갑자기 닥친 일이었다면 두번째 장례는 언제가 다가올 일로 첫번째 경험을 살려 잘 해내고 싶었다.


부모를 잃은 슬픔을 안다고, 어떻게든 견디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왜 그렇지 않았을까 다시 물어본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이 슬픔은 도대체 무엇인가.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라는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우리 교구 신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허찬욱 신부님이 쓴 작은 이야기가 어떤 계시처럼 내게 말을 건넸다.


'너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슬픔이란 다 그런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신부님은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알지 못하며 기껏해야 나의 고통에 빗대어 짐작할 뿐이다.


그동안 사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위로했지만 과연 내가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아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뱉은 위로의 말은 모두 새벽녘 물안개 같은 것이었다. 현실 혹은 진실의 태양이 내리쬐면 사라져 버리는 허망한 것. 이런 깨달음은 내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 온 다음에야 왔다.




오늘은 이른 새볔 낙동강으로 나아가 뛰었다. 나만이 알고 있는 리듬으로 아픔을 감당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빨리 뛰었다. 강가에서 홀로 뛰는 이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내내 격한 호흡을 내뱉었다. 내가 고통을 대하는 방식, 내가 슬퍼하는 방식이 이렇다.


삼우미사를 마치고 가족들 모두 부산으로 내려왔다. 아버지 방에서 유품을 정리하면서 어머니 떠나신 후 십년 삶을 들여다본다.


작은 방에 남은 온가지 약들, 옷가지들, 그리고 꽤 무게있는 파일 하나와 통장 두개. 이것들이 아버지 인생의 전부처럼 보였다.


가족 중 누구는 '서글프다' 했지만 이 또한 아버지 인생이기에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흔적이란 삶의 축적이며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느낌은 타인은 차마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있는 그대로 소중할 뿐이다.


부산에도 비가 온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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