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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영혼의 안식처 한티에서

만일 어제는 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오늘이야말로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만일 남은 생을 온전히 투신하고자 한다면 반백년을 살고 한숨 고른 다음 두려움없이 나설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좋은 나이가 아닌가.


만일 하느님 안에서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다면 신학교에 입학해서 살았고 이십년전 30일 대침묵 피정을 했던 한티야말로 가장 좋은 곳이 아닌가.




세상에 '만일'이 있을까.


'만일, 그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은 해봐도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온 사실 앞에서 만일은 힘이 없어 보인다.


'만일 그가 살아있다면'하고 바래봐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른 만일'은 어떨까, 곧 다가올 일을 마치 지금의 것인양 받아들이고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영혼의 안식처이자 마음의 고향인 한티에서 연중피정을 하며 그 길을 생각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은 '자유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이유로 산다. 성공, 명예, 행복이 각자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의 자기의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 바오로는 대답한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0-22).


나는 하느님의 거처로 자라나는 성전이다. 그동안 나만을 위한 집, 나만의 갖춰진 공간을 상상하고 살았는데 이제 나 자신을 사람들이 와서 머물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으로 봉헌하고자 한다.


자라나는 성전, 누추하지만 온기가 있고 투박하지만 나름 멋이 있는 그런 집으로 지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쉼터가 되며, 아프고 슬픈 사람에게 위로의 공간이 되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성당이 된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오늘 새벽 꿈을 꾸었다. 생생한 꿈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 앞선 글 '축구시합'이다. 삶의 기대와 더불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느끼는 황망함, 그로부터 자라나는 자신을 보았고 한참을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 가시는 길에 사랑하는 사람들, 나에게 사랑을 보여준 사람들 덕분에 자기의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이제는 갈라지지 않는,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자라야겠다.


만일을 한번만 더 쓴다면,


만일 삶에 의미라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의미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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