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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 우리의 다음 소희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그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수해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태원 참사와 더불어 반복되는 참사를 보면서 누가 진정으로 아픈 이들에게 미안해 하고 누가 같이 울어주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책임을 지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는데 미리 변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사회에 도무지 어른이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전 정권, 카르텔, 남만 탓하는 현실이 아프고 슬프다.




나는 재미있고 무겁지 않은 영화, 공포와 복수, 자극적인 영화보다는 액션과 가족적인 영화를 선호한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처럼 때론 어둡고 힘든 영화를 봐야 할 때도 생기는데 그럴 때는 본능을 억누르는 용기를 낸다.


<다음 소희>가 그랬다. 네이버 평점 9.41로 '충격적이며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작품임에도 어둡고 힘든 영화라 생각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거슬러 139분의 짧지 않은 시간을 정말 몰입하며 본 후에 정주리 감독에 대해 깊이 감사하면서 배두나와 김시은 배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익숙한 액션이나 그저 그런 자극적인 영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다 나보다는 잘 지내고 있다고 가정하는지, 젊은이들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없는 것이 없어 철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세상은 좋은 사람들에 의해 부정이나 부패 없이 잘 돌아간다고 믿는지 모르겠다.


소희는 오늘도 우리가 길에서 지나친 고등학생이다. 직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춤을 좋아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도 어쩔 수 없는 아이다. 소희를 둘러싼 어른들과 그들의 현실은 무관심, 무감각, 오로지 성과로만 가득 차 있기에 오늘도 소희는 답답하다.


취업률 때문에 현장실습으로 내모는 학교와 담임, 성과 때문에 불의를 묵인하는 교육청, 정량 평가와 인센티브로 직원을 도구로만 보는 회사가 소희를 울게 하고 숨 막히게 하고 죽게 만든다.


나와 너, 우리의 다음 소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단 말인가!


어른으로서 이런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했기에 부끄럽다. 적어도 '그래서는 안되는 일' 앞에서 못 본 체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울고 싶은 아이가 있다면 내 앞에서는 맘대로 그래도 된다고 하고 싶은데.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


소희의 흔적을 뒤따라가는 형사 유진(배두나)의 말이다. 누구도 대놓고 그러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가 그렇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쳤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며, 누군가의 땀과 희생으로 지금의 내가 있는데 언제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당연히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가.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생각한다면 감사하지 않음이 부끄러운 일 아닌가.


다음 소희는 우리 주변에도 많다. 택배 기사님, 청소하시는 분, 버스 기사님 등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분들을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악마가 우리 사회에 뿌리는 가라지는 사람으로 하여금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연민에 갇히게 만드는 것이다. 나만 불쌍하고 나만 중요한 느낌을 키워서 도무지 남에 대해 관심이나 연민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현대판 가라지다.


이제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세대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면 좋겠다.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자신을 넘어서는 일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영화 <다음 소희> 덕분에 지난 3월 30일에 ‘다음 소희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에 대한 ‘강제 근로·폭행·착취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다. 세상은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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