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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이가?

나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대호가 나보다 열살이나 어리다고?"


어느날 아침 식사 후 동료 신부님들과 산책 중에 우연히 롯데 야구선수 이대호가 나보다 10년 가까이 어리다(1982년생)는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놀라서 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추신수(1982년) 뿐만 아니라 이승엽(1976년)도 내 동생뻘이다.


우리가 머리로 생각하는 자신의 나이는 얼마일까?


최근에 나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머리로 인지하는 나이와 몸으로 느끼는 나이가 실제 나이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난 4월 The Atlantic 잡지에 실린 Jennifer Senior의 글 "The Age in Your Head(당신이 생각하는 나이)"에서 중요한 답을 찾았다.


작가는 '주관적인 나이(Subjective Age)'가 있어서 사람이 느끼는 나이는 실제 나이와 다르다고 한다. 나의 경우, 이번 달에 50이 되지만 내가 머리로 생각하는 나이는 36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대 20대 때에는 자신의 나이를 실제 나이보다 많게 생각하지만 나이 40이 넘은 사람은 평균적으로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20% 어리게 여긴다고 한다(실제 나이 50이면 머리로는 40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2021년 3월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첫학기를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있었던 일이다. 내 교목실 앞에서 어떤 여학생이 서성거리다가 쭈뼛거리며 들어오길래 "학생, 무슨 일로 왔나요?"하고 다정하게 물었다. 학생은 '아버지가 신부님께 인사하러 가라'해서 왔다고 했다. '아버지가 누군데?'하고 물으니 '성당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 주 이번에는 남학생이 왔는데 똑같이 다른 성당 고등학교 동창인 아버지가 인사하러 가라해서 왔다고 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대학생들과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런데 대학에서 2년 반을 같이 살면서 20대들에게 달리기를 가르치고 같이 달려보면 내가 그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체험한다. 내 몸의 나이는 훨씬 젊은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내 머리 속 나이는 그렇지 않아 갈등이 생긴다. 아버지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사회적 통념을 따르다 보면 나의 30대 자아와 50대 자아가 충돌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나이 50은 과연 반백년을 살았으니 뒷짐지고 사랑방으로 물러나야 할 나이인가?


그렇지 않다. 이제서야 나는 배움을 일단락 한 것 같다. 20대의 방황과 신학교 입학, 30대 사제서품, 40대 사제로 살아온 시간을 지나면서 기본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쳤고, 이제 배움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 머리 속 나이는 실제 나이와 다르다. 때론 나이가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이 25에 어머니가 죽고 난 뒤, 나이 15에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나락을 경험한 경우, 혹은 나이 12에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심리적 성장을 멈춘 경우에는 나이가 들지 않기도 한다.


똑같지는 않지만 내 나이 27에 신학교에 입학한 것 역시 그 때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나이를 살게 된 것 같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어떤 일부는 시간 밖에 살고 있다."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공통적으로 시간을 잃었다고 느낀다. 집에 갇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늘 하던 보통의 경험을 할 수 없었기에 실제 3년을 그 시간만큼 체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세 신학자들이 재미있는 질문을 했다. '천국에서 사람들은 과연 몇 살일까?' 정답은 33세.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나이이기도 하지만 한 개인의 삶에서 활력과 성숙의 정점의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나이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말하기 꺼리고 보여주기 싫어한다. 나이든다는 것은 젊음을 잃는다는 것이고 쓸모가 없어진다고 여기기에 어떻게 해서든 젊게 보이려고 온갖 방법을 쓴다. 과연 그러기만 할까?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만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과거로 돌아가기보다는 현재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어렵게 얻은 현재의 깨달음, 겸손, 자신에 대한 이해를 과거의 시간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이며, 현재의 내가 가장 멋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이드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희망적인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을 좀 더 알고 사랑하게 되고, 이웃과 세상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시간이라는 것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친구삼는 것이 좋다. 주름든 얼굴을 사랑하고 좀 천천히 가겠지만 꾸준히 움직일 수 있는 몸을 계속 가꾸면서 사는 것이 시간과 함께 사는 것이다.('나이가 들면 운동을 줄여야 할까?'라는 주제로 다음 글을 쓰고 싶다.)


내 나이 50, 젊음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도 여전히 젊고 활기차게 살 수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실제로 더 빨리 나이가 든다니 나이 70이 되면 깨닫게 될 것을 굳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그보다는 지금 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 일단 즐기자. 시간이 또 다른 선물을 가져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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