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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곳

카르투시오 수녀원

일년에 한번 나는 세상에 없는 곳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난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곳, 침묵과 기도만이 있는 그곳은 카르투시오 수녀원이다.


1084년 성 브루노에 의해 창설되어 철저한 봉쇄와 침묵, 고독 안에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찾는 카르투시오회는 “세상은 변하지만 십자가는 변하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천년 가까이 초기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가톨릭 수도회 가운데에서도 가장 엄격한 수도회로 알려져 있다.


2005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으로 알려졌으며, 카르투시오 수녀원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2002년이다. 이곳에 두번째 한국 종신서원자가 바로 친구 수녀님이기에 나는 영적 동반자 자격으로 일년에 한번 방문을 허락받는다.

주님탄생예고 카르투시오 수녀원(충북 보은)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2016년 1월 1일에 있었던 수녀님의 종신서원식이다. 새해 첫 아침 종신서원미사에 공동체 수녀님 외에 참석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종신서원식은 성인의 유해가 현시된 제대 앞으로 종신서원수녀가 나아가 몸을 깊이 숙이며 노래로 시작되었다. 


“Suscipe me, Domine, secundum eloquium tuum, et vivam; et non confundas me ab expectatione mea.”(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저를 받아주소서. 그러면 제가 살겠나이다. 주님은 제 희망을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이어서 공동체가 번갈아 세 번을 반복한 뒤 영광송을 노래했다.


종신서원수녀는 이어 원장수녀 앞에 무릎을 꿇고 “원장 수녀님,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하고 말했다. 그리고 차례로 공동체 수녀들 앞에도 무릎을 꿇고 말했다. “수녀님,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종신서원수녀는 서원문을 낭독하며 ‘정주, 순명, 삶의 전향’을 종신토록 서원했다. 주례사제였던 나는 제대에 엎드린 수녀를 강복하고 성수를 뿌렸다. 이로써 종신서원식은 끝이 났다.


단순함, 충실함, 그 안에 있는 절제된 열정이 느껴지는 미사였다. 침묵 가운데 온전히 흡입되어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놀랍고 기뻤다.


종신서원미사 후 모든 수도자들은 예전처럼 침묵과 고독의 독수처로 돌아갔다. 사진도 축하식도 잔치도 없었다. 잠시라도 수도생활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마치 수목한계선 너머에서만 자라는 가문비 나무 같았다.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을 감내하며 조금씩 자라는 가문비 나무만이 최고의 바이올린을 만드는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깊은 공명은 오직 침묵과 고독을 안고 자란 사람에게만 허락된 하느님의 은총이기에.

성당으로 가는 회랑


카르투시오 수녀의 하루는 다음과 같다.

12:00 밤기도, 새벽기도

(2-3시간의 기도 후 잠 들었다가) 6:30 기상, 식사

7:00 일시경

7:30 삼종기도

8:00 미사

9:30 삼시경, 독서, 일

11:45 육시경

12:00 삼종기도, 식사, 휴식

13:45 구시경, 일

16:00 저녁기도, 자유기도, 식사

19:00 삼종기도, 끝기도

20:00 취침


이 모든 일이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며, 식사는 주일과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독수처에서 채식 위주로 간단하게 한다. 일주일에 한번 산책시간이 있는데 이때 짝을 정해서 대화를 할 수 있다.


현재 프랑스 모원에서 파견된 외국 수녀님 네분과 신부님 외에 한국 수녀님은 열명이 있다.


일년에 한번 나는 세상에 없는 곳에 와서 나를 돌아본다. 그동안 세상 안에서 나의 욕심, 남들의 기대, 세상 걱정에 찌들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던 나를 만난다.


과연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은 무엇일까? 


또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나는 누구인가?


답 대신 바람이 불어온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부는 바람은 성령의 현존을 느끼게 한다.


아침미사에서 나는 수녀님들께 말했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한대로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로마 11,29). 이 말씀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용서하는데 지치지 않지만 지치는 것은 용서를 청하는 우리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로마 11,32). 삶이란 나의 불순종과 하느님의 자비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한계, 나약함, 죄는 하느님의 자비와 같은 말입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로마 11,33). 삶은 하느님을 만나고 알고 사랑하는 과정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로마 11,36). 


그 길에서 여러분의 삶은 어두운 밤에 빛나는 북극성처럼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헌신과 삶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짧은 평일미사 후 장엄강복을 했다. 나의 몫은 여기까지다.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세상에 없는 곳을 돌아본다. 바람만이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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