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부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경쟁에서 공생으로

"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추천사에서 최재천 교수는 고백한다. 왜냐하면 생물학자들은 자연을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하고 경쟁적인 것으로 묘사했고, 그 근거로 다윈의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윈의 <종의 기원> 1859년 초판에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적자(The fittest)'라는 단어도 없다. 그렇지만 몇 년 뒤 <종의 기원> 5판에서 다른 사람의 표현인 적자생존이 도입되어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우월한' 자가 더 잘 생존하며, 심지어 더 잘 생존해야 마땅하다는 오해를 낳았다.


1등만이 최고이며 그보다 못한 존재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개념이 여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자연의 세계에는 우월이 없으며 모든 생물은 서로 도우며 공생한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그동안 적자생존이라는 이름하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그래서 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는다는 '더 나은 존재의 생존(Survival of the fitter)'이라는 개념을 알아들어야만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현재 인류가 살아남게 된 것도 특유의 친밀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30만년 전 지구상에는 최소 4종 이상의 다른 사람 종이 공존했다. 대표적인 사람 종은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다.


1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지구상에서 번성할 가장 유력한 인간 종이었다. 그는 아프리카를 떠난 탐험가이자 전사로 자기방어를 위해 손도끼를 만들고 불을 사용해 요리를 한 최초의 인류였다.


하지만 7만 5천년 전에 이르면 네안데르탈인이 주도권을 가져간다. 그는 어떤 환경에도 적응한 우리만큼 머리가 큰 기술좋은 사냥꾼이면서 동시에 동료를 돌보고 장신구로 치장하고 동굴벽화를 남길만큼 뛰어났다.


그렇치만 5만년 전이 되자 호모 사피엔스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훨씬 복잡한 연장으로 무기를 만들고 전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2만 5천년 전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단연 주도적인 사람 종으로 우뚝 서 유목생활 대신 농사를 지으며 거주하기 시작한다. 공동체 생활과 교류를 통해 발전하면서 인류의 폭발적 증가를 이루어냈고 현생 인류처럼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만이 가진 초강력 인지능력인데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 때문이다. 다른 똑똑한 인류가 번성하지 못할 때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특정한 형태의 협력에 출중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하는데 이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면서 일생을 살아간다. 


마음이론 능력으로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타인과 협력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때로는 마음이론 때문에 고통과 증오,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한다. 또한 복합적인 언어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문화와 학습의 기반이 되었으며, 친화력을 갖춘 사람들이 밀도 높게 결집했을 때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왔다. 


결론적으로 타인의 의도나 욕망, 감정 등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기억력, 전략능력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과 결합하지 않으면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인간이 가진 친화력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진화했다. 자기가축화는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인간은 가장 높은 수준의 가축화를 이룬 종이다. 애착과 접촉, 호기심과 놀이, 공감과 협력 등의 여러 정신적 형질은 그 자체로 인간성의 본질이라 할 만하다.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보면 개는 사람이 길들이지 않았으며 친화력 높은 늑대들이 스스로 가축화한 것이다. 때문에 개는 사람들 곁에서 사람들이 버린 음식들을 먹으며 오랜 시간 진화했으며 그 가운데에는 똥도 포함되어 있다.


가축화된 개는 침팬지보다 똑똑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능지수(IQ)의 최고는 침팬지이지만 감성지수(EQ)의 최고는 개다.


개는 침팬지와는 달리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생존이 달려있고, 개는 가축화되는 과정에서 사람과의 인지능력의 진화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침팬지는 인지능력이 뛰어나도 개와 달리 공동 목표를 위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침팬지와 다른 보노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침팬지 암컷이 우두머리 수컷에게 복종되어 살아간다면, 친화력 좋은 암컷 보노보는 서로 돕고 살 수 있어 수컷의 공격성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공격성이 가장 낮은, 새끼 보노보에게 해가 되지 않는 수컷과 짝짓기하기를 선호한다. 수컷 보노보에게 가장 강력한 승리의 전략은 친화력이다. 그래서 수컷 보노보는 마마보이가 가장 유리한데 수컷이 암컷을 만나는 최상의 방법은 어머니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나 보노보와는 달리 인간의 인지능력이 다른 자기가축화된 동물들의 마음이론보다 압도적으로 탁월한 이유는 자제력 때문이다. 


자제력이 없다면 우리는 죄다 이혼했거나 감옥에 있거나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자기가축화 과정이 시작될 때부터 극도의 자제력을 지녔던 것은 인간 뿐이었다. 자제력과 감정조절 능력이 결합되어 사람 고유의 사회적 인지능력을 만들어냈다.


사람은 자제력이 강화되면서 마음이론, 계획 수립, 추론, 언어 등의 초강력 인지능력이 발달하게 되고 그에 이어서 우리 종 특유의 행동 현대성과 복합적인 문화 전통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제력은 아주 더디게 발달해서 20대 초반이 되어야 완전한 성인 수준이 된다.


우리 종이 태어날 때 뇌 크기는 성인 뇌의 4분의 1인데 다른 영장류 동물들은 태어날 때 뇌 크기가 성체의 절반 크기에 달한다. 이는 사람 아기가 말도 못하게 무력한 존재라는 뜻이다.


거기다가 인간은 태어날 때 머리뼈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 두개골이 완전히 다 발달해 태어나는 대부분의 포유류와는 달리, 호포 사피엔스 아기는 머리뼈가 완전히 결합되지 않고 구멍이 있는 상태로 태어난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은 태어난 직후 뇌의 성장이 멈추지만 우리는 태아기의 뇌 성장 속도가 출생 후 2년까지 유지된다. 이 기간에 뇌신경인 시냅스가 발달하면서 가지치기가 일어난다.


인간만이 어린 나이부터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쌓여온 지식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점도, 우리 종의 생존에 비할 데 없는 우위를 준다.




침팬지의 협력이 공포와 폭압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면 수렵채집인들의 협력은 모두에게 보상으로 돌아갔다. 


우리 종은 집단 내 타인과 친구가 되는 능력으로 진화 적합도를 상승시킨다. 친화력 선택으로 집단 내 타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범주가 만들어졌다. 낯선 이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계속해서 향상되어 갔고 이것은 자기가축화의 산물이다. 


확장된 가족 개념은 과거 우리 종의 성공에 이바지했으며, 인구가 증가할수록 그리고 더 많은 자원을 써야 할수록, 우리 종이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신뢰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는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우리는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험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이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우리에게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새로운 능력과 더불어 심지어 집단 내 타인까지 강하게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났다. 우리가 더 강렬하게 사랑하게 된 이들이 위협을 받을 때 사람은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특정 그룹에게 더 위협을 느낄 때 그들에 대한 비인간화의 경향이 높아진다.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소는 그들이 먼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인식이다. 최근 진행중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서 보듯이 서로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는 보복성 비인간화에 기초한다.


다른 인간에 대한 비인간화는 인종차별과 인간 품종 개량을 목표로 한 우생학eugenics으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현실은 비인간화된 신종 편견에 따라 더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변해가고 있다.


과학 기술조차 선한 힘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가진 최고의 미덕과 최악의 본성을 함께 예측하고 개발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속성을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선한 본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견실하게 증명해 온 유일한 정부 형태는 민주주의이지만 현재 우리는 "20세기가 민주주의의 승리를 목격했다면 21세기는 민주주의의 실패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배후에는 대안우파의 출현이 있는데 이들은 사회지배 성향이 높은 사람들로 '적자생존'이라는 통념을 신봉한다. 그들은 "사회에는 다른 집단들보다 열등한 집단이 있다"고 믿으며 "이상적 사회라면 일부 집단이 상위를 차지하고 나머지 집단들이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지배 성향과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은 자신들의 집단 동질성에 위협으로 느껴지는 외부자들에 대해서 극도의 불관용을 보인다는 점이다.


극단에 가까운 신봉주의자는 누구라도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뼈 없는 혀가 척추를 부서뜨리는 법이다."


그래서 타인을 비인간화하며 포퓰리즘으로 등장한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민주주의 적이자 인류의 위협이다.


결국 사랑은 접촉이 요구되는 스포츠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에 따라 더 평화로운 전략이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낸다. 폭력 시위는 위협감을 가중시켜 보복성 비인간화의 순환 고리에 불을 붙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촛불시위에서 보았듯이 대중의 지지를 호소하는 평화 시위의 성공률이 2배 높으며, 폭력적 국가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은 4배가 더 높다.


나도 반성한다. 주변에 개나 고양이에게 너무 많은 정을 쏟는 사람들을 비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지만 한편으론 내가 개와 고양이에 대해 사회지배 성향이 높다는 것은 '열등한' 집단에 속하는 타인을 동물로 바라보기 쉽다는 점일수도 있음을 자각하니 아찔하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티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