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초를 켜며
오늘 우리대학 교목처 성당에서 약학대 학생 둘의 혼인예식이 있었다. 때론 교수로, 때론 동아리 지도신부로 만났지만 혼인주례 사제로 이들 앞에 서니 색달랐다.
거기다가 두 개 학년의 동기들까지 모두 왔으니 오랜만에 성당은 웃음소리, 이야기소리로 가득찼다.
늘 있는 일이 아닌데다 서른 일곱살 약대 학생 둘이 선후배로 만나 재학생 신분으로 결혼까지 한다니 놀랍고도 흥분되는 날이었다. 그런 나를 땅에 묶어 두려는 듯 날씨는 어둡고 무겁게 가라 앉아 있었다.
혼인 예식 가운데 잘 생긴 신랑과 아름다운 신부에게 나는 선물로 성가정상과 초 두개를 주면서 말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가정상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혼인초는 두 사람 가운데 누구라도 마음 속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혹은 더 미안하거나 더 사랑한다고 느낄 때 초를 켜면 배우자는 다른 초를 켜고 상대편 앞에 앉아 그(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언제라도, 초가 켜지면 끝까지 듣는 것입니다. 약속할 수 있겠습니까?
두 젊은이는 약속했다. 알고는 하지 못할 약속, 누가 처음부터 결혼이 무엇인지 사제생활인지 무엇인지 알고 할 수 있을까. 다만 용기를 내는 것만이 최선인 것을.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미래를 응원한다. 함께 초를 켜고 기도한다.
날이 흐리든, 눈이 오든 오늘은 결혼하기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