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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사랑

영화 <말없는 소녀>와 소설 <맡겨진 소녀> 후기

어떤 분의 소개로 <말없는 소녀>라는 영화를 보았다.


1981년 혼란한 아일랜드에서 한 소녀가 먼 친척집에 맡겨진다. 왜냐하면 그녀의 엄마가 곧 다섯번째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집안 형편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소녀는 자주 잠자리에서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한번도 소녀의 손을 잡아 준 적 없는 아버지는 소녀를 차에 태워 와 맡기고는 짐도 내려놓지 않고 가버린다. 그래서 상냥한 주인 아주머니가 챙겨준 남자 아이 옷을 입게 된다.


다음날 아주머니는 소녀에게 비밀의 우물에 가자고 한다. 그곳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물 맛이 아주 좋은 우물이 있다. 소녀는 물 맛을 보고는 속으로 말한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소녀의 바램대로 그곳은 포근한 집이 된다. 일상은 한결 같지만 아주머니는 모든 일에서 소녀를 따듯하게 대하고 가르치고 칭찬해 준다. 말이 없는 주인 아저씨 역시 아주머니 몰래 쿠키를 주거나 매일 집 입구에 있는 우편함까지 달리게 하면서 시간을 재준다. 


어느날 소녀는 말 많은 동네 아주머니를 통해서 자신이 머무는 방, 자신이 입고 있었던 옷이 사고로 죽은 아주머니와 아저씨 아들의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날 밤, 아저씨는 새로 산 구두를 길들이자며 소녀에게 바다로 가자고 한다. 바닷가에 도착해 모래 위를 걷고 뛰며 산책을 하다가 아저씨는 이웃 여자 때문에 상심한 아주머니를 생각하며 어떤 말을 했는데 소녀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자 그때 아저씨가 말한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녀는 멈춰 서서 바다를 돌아본다. 그때 아저씨가 바다의 불빛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세 개가 되었다 말하며 소녀를 두 팔로 꼭 안아준다. 마치 소녀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없는 소녀> 영화는 대사가 별로 없다. 가난한 집에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소녀는 글도 제대로 못 읽고 소변도 제대로 못 가린다. 아버지는 도박에 빠져 하나 뿐인 암소마저 잃고 가정에는 소홀하다. 소녀가 말이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우리 주변에는 당연해 보이는 고통이나 슬픔이 많다. 말없는 학생들, 어두운 젊은이들, 슬픈 어른들...말을 잃어 버린 우리는 그저 주어진대로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해 보일 때 <말없는 소녀>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심장이 가슴 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 필요하다. 다만 어디에서 누구에게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점이 어렵다.


<말없는 소녀>는 클레어 키건의 원작 소설 <맡겨진 소녀(Foster)>를 영화화 한 것이다. 


<맡겨진 소녀>는 짧지만 깊이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애써 흔적을 들어내는데 많은 공을 들이며' 독자의 상상력에 많은 것을 맡긴다. 


나는 <말없는 소녀> 보고 <맡겨진 소녀> 읽으며 영화의 대사 하나, 표정 하나가 얼마나 실감있게 드러났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영화를 다시 한번 더 볼 계획이다.)


주인 아저씨가 소녀를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 아이'라고 칭찬하고, 책의 마지막에 아이가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소중한 진리를 가르쳐 준다. 


말없는 소녀가 말없는 사랑을 통해서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변화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소녀가 주인 아저씨에게 달려가 품에 안겨 하는 말은 나도 눈물 흘리게 했다.


한편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말없는 소녀>를 보고 <맡겨진 소녀>를 읽는다면 여러분은 분명 참으로 중요한 것을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말없는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여러분 모두 사랑을 말하고 느낄 수 있는 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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