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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저는 아니겠지요?"(마르 14,19)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다가올 수난을 예고하자 제자들이 근심하며 차례로 묻기 시작한 말입니다.


'저는 아니겠지요?'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시련이 닥칠 양이면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힘든 자리가 생기면 그 일이 나에게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실은 저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골치 아픈 일들이, 때론 고통과 환난이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저는 아니겠지요?' 이것은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은 아니라는 항변이며,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베드로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마르 14,29)라고 장담까지 했지만 결국 그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베드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치며 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불필요한 의미없는 혼자말이 아니라 죄를 뉘우치는 회개입니다. 그동안 당당하게 혹은 비겁하게 지은 모든 죄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성주간 여정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성주간 여정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입니다. 루카 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여러차례 예루살렘에 가면 안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럴수록 그분은 앞장서 가시며 뚜렷이 자신의 사명을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3).


죽을 줄 알면서도 가는 곳, 죽으러 가는 곳, 그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모든 인간이 가는 마지막 장소입니다. 많은 경우 나는 죽지 않을거라 생각하거나 애써 모른채 하면서 가기는 합니다만 결국 예루살렘은 하느님 아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마지막 종착지인 무덤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성주간에 예루살렘으로 초대받습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앞으로 '십자가의 길을 같이 걷겠느냐?'하는 초대장이 왔습니다. 어떤 이는 '저는 아니겠지요?' 하겠지만 어떤 이는 '따르겠습니다.'하고 나설 것입니다.


죽으러 가지는 못하더라도 사랑하는 그분이 어떻게, 왜 그 길을 걷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성주간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모든 인간의 무덤이기에 예루살렘에서만 부활이 일어납니다. 부서지고 견디고 죽는 곳에서만 다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서성이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예루살렘으로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주님이 저기 앞서 가고 계십니다.

서유미 소화데레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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