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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연중 제19주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두가지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첫번째 상황입니다.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매일 해야 할 일, 먹고 사는 문제, 자녀 양육과 복잡한 인간관계, 부모님 걱정으로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조용히 시간을 내어 침묵하며 앉아 있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친한 친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허망합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살 날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남은 가족은 어떻게 하나요? 저나 제 가족에게도 그런 일이 닥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두번째 상황입니다. 불안합니다. 경기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도 불안하고 미래도 걱정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변했습니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자연재해는 더 심해지고 예전처럼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 가족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더 나아가 지구 전체가 거친 폭풍우 속에서 가라앉는 배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최선의 선택이라면 일단은 위험하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한 배에 있는 것이겠지요? 그동안 살아온 방식, 안전, 익숙함을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배가 가라앉기 전에는 배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겪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같은 일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도 일어납니다. 이제 이런 상황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어떻게 일어났고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봅시다. 


첫번째 상황에 직면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사촌 요한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악당같은 헤로데 왕에게 갑자기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이며 둘도 없는 사촌이며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 그가 허망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갑자기 닥친 비극을 천천히 생각하며 기도하면서 조용히 있고 싶어 제자들과 함께 호수 건너편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미리 육로로 서둘러 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아픈 병자들, 고통받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오장육부가 끊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르치고 병을 고쳐주고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한번이지만 모두를 배부르게 먹일 수 있다면 그것을 왜 못하겠습니까! 


모두가 배불리 먹고 떠나자 이제서야 시간이 생겼습니다. 하루종일 정신없이 바빴기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늦은밤 혼자 산에 올랐습니다. 사촌 요한의 죽음에 대해 하느님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기도해야 이 어려움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침묵 가운데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때 제자들이 폭풍우 속에서 바람과 파도에 심하게 시달리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들도 제가 필요합니다. 가야겠지요. 물 위를 걸어서라도 그들에게.


두번째 상황에 직면한 제자들입니다. 맞바람이 불고 파도가 심하게 몰아쳐 그들이 탄 배가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젖지만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습니다. 불안과 공포가 모두를 감싸는데 무언가 물 위를 걸어옵니다. 성난 파도 위를 걷는 사람같은 것은 유령이 틀림없습니다. “유령이다!” 모두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댑니다. 그때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합니다. 유령과 무언가 말을 주고 받는 것 같더니 배에서 일어나 배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시커먼 물이 그를 삼키려 하는데 배를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안전과 목숨을 버리는 미친 짓을 하는 그는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물 위를 걸어갔습니다. 땅 위를 걷듯이 성큼 성큼 물 위를 걸었습니다. 기적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과 제자들, 특히 베드로의 모습으로 바라본 두가지 상황입니다.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과 가라앉고 있는 배, 모두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인가요? 그럴 수 있지만 저는 다른 기적을 더 눈여겨 봅니다. 


살다가 갑자기 닥친 어려움, 시련, 죽음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울 때 하느님 아버지를 찾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기적 아닐까요!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이 몰아쳐 올 때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기적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그 모든 번잡함, 소란함, 힘듬 속에서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혼자 기도하신 것, 그것이 기적 아닐까요! 오천명을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이고, 물 위를 걷는 것보다 무엇이 주님께 더 중요한 일이었을까요? 


또 있습니다. 거친 파도가 치는 가운데 안전함, 안락함, 익숙함을 버리고 배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기적 아닐까요! 내 안의 아픔과 두려움에 갇혀 있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발걸음을 한번 더 내딛는 것, 그것이 기적 아닐까요!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은 오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입니다. 


기적은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감정만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한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기적은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하신 예수님 말씀을 믿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보면 그만 두려워져 가라 앉습니다.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내딛뎠는데 넘어집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기가 엄마를 보고 첫걸음을 뗄 때 넘어져도 괜찮은 것처럼 주님이 곧 잡아주고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나서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으면, 빠지지 않으면 구함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인생은 모험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하고 헬렌 켈러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넘어질 때 비로소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폭풍우 속 가라앉는 배에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한 발걸음을 뗄 수 있는 것도 그분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기적이란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 두려움 속에서도 믿고 발을 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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