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30주일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는 눈먼 거지입니다. 거지에다가 눈까지 멀었으니 그는 하루하루 살기가 무척 힘겨웠을 것입니다.
바르티매오는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을까요? 소경인 그를 부모가 버렸고 거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바르티매오는 한때는 볼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병 때문인지 아니면 사고 때문인지 그는 소경이 되었고 그래서 거지가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었을 때, 그는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소경과는 다르게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눈먼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간절히 다시 보고 싶어합니다.
때론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보는 것의 의미를 깨우쳐 줍니다. 때론 고통이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눈이 먼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아주 안 보이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겠지만 어떤 것에 눈이 가려져 볼 수 없게 되는 것, 혹은 마음에 가득 찬 것 때문에 볼 수 없는 것 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노안이 와서 잘 안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 고집이 세져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할 때, 혹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길 때 우리는 눈이 멉니다.
재물, 인기, 안락, 권력에 눈이 멀기도 합니다.
모든게 내 책임이라는 죄책감, 그 사람만 없으면 혹은 그 사람만 아니면 이라고 믿는 시기와 질투, 내 안에 감춰진 화와 분노,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무관심에 눈이 멀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그냥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눈먼 것처럼도 합니다.
혹시 잘 보이십니까? 노안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잘 본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때론 눈먼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습니까?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을 못 본 척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눈먼 사람입니다.
눈이 멀면 거지가 됩니다. 거지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자신 외에 다른 이를 볼 수 없는 사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 남을 위해서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도 거지입니다.
보통 사람은 외롭고 불쌍하지만 거지는 정말 외로운 사람,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바르티매오는 눈먼 거지입니다. 한때 보았지만 볼 수 없게 되었고, 그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르티매오는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여러분은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십니까? 여러분에게는 간절한 무엇이 있습니까?
그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간절한 것이 없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잘 보는 사람입니까?
복음의 마지막에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는 다시 볼 수 있게 되자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예수님을 따라 길을 걷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눈이 먼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눈이 멀어 예수님의 길을 잃고 자기 안에 갇힌 거지가 된 것입니다.
바르티매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의 간절함과 믿음이 절실합니다.
여러분은 잘 보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간절히 청할 것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