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안개비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리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새벽 5시 40분, 미사를 위해 사제관을 나선다. 먼 동이 터오는 아침에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보인다.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하루를 시작하는 의례로 맞이하는 아침의 색깔, 바람, 공기, 냄새가 다 다르다. 방금 내린 커피가 구수하다. 몸이 깨어나고 마음은 동쪽으로 향한다.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이끼를 거쳐서 옛 탑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오랫동안 내 삶의 기초는 무언가(something)에 있었다. 그것은 대학이고, 직장이고, 돈이고, 성공이고, 명예였다. 사람들과의 관계조차 어떤 것으로 치부되어 삶의 장식품처럼 여겼다.
근원은 알지 못한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반백년을 넘게 살고보니 이제서야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누구(someone)라는 것을 깨닫는다. 누구와 만나고 누구와 이야기하고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삶의 모든 것임을 배운다.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시작에서 제자들에게 묻는다. "무엇(something)을 찾느냐?(요한 1,38)"
하지만 마지막에는 다르다. "누구(someone)를 찾느냐?(요한 20,15)"
타고남은 재가 다시 시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새벽 하늘을 보며 만해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라는 시가 자주 생각났다. 시인의 마음은 사랑하는 누구를 향해 있고, 그 마음이 진실로 간절하다.
나는 누구를 찾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