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화창한 날
대구시 서구 평리동은 오래된 동네이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아파트보다는 작은 단독 주택이 많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수녀님들의 초대로 친구 신부와 함께 성탄미사를 드린 적이 있다.
수녀님들의 수도원은 ㄴ자 형태의 작은 마당에 방이 세개 있는 한옥집으로 그것을 '우애의 집'으로 불렀다. 골목길을 한참 걸어들어가야 하니 차가 들어오기도 어려운 빈민촌 한가운데에서 수녀님들은 사복을 입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 살고자 공장 직공, 청소부로 일하고 계셨다.
곱게 빗질한 머리와 유행이 지난 옷, 목걸이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아니라면 수녀님이라고 할 수 없는 수녀님들과 성탄미사 준비를 했다. 감실이 있는 온돌방에 마련된 제대와 소박한 구유를 꾸미고 굳이 사제들을 아랫목에 앉히시려는 수녀님들, 친분이 있는 자매님까지 들어앉자 좁은 방은 가득찼다.
반주나 분향은 없었지만 가슴에서 나오는 찬양과 떨리는 강론, 바닥의 온기와 가까이 앉은 친밀감이 바깥 추위에는 아랑곳없이 모두의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처럼.
성탄 미사 후 생일 케익에 불을 붙여 예수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다과를 나누다가 잠시 방을 나왔다. 마루에 잠시 앉았다 마당을 지나 난간도 없는 대문 위 작은 옥상에 올랐다. 하늘을 쳐다보니 찬 공기가 폐속 깊이 들어찼다.
저 멀리서 빛나는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 수많은 붉은 십자가, 별과 함께 성탄 전등을 한없이 길게 늘어트린 교회들을 보면서, 저 많은 곳에 예수님이 모두 오셨을까 싶었다. 진심으로 그러길 바랬다.
도시의 광야이자 마굿간 같은 이곳에서 갓 태어나신 예수님을 만나고나니 그 사랑과 평화를 모두에게 나누어주고픈 마음 뿐이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