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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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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도 튀기면 맛있어요!

군위성당 견진성사 날, 하늘은 높고 구름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다. 누가 선택했는지 날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동안 본당신부가 행사로 선택한 비오고 우중충했던 모든 날이 오늘 한방으로 다 용서되었다.)


새벽 5시 40분, 창 밖에서 누가 '없어요!'하는 소리를 질러 깨었다. 뭐가 없는지는 모르지만 누군지 짐작이 갈 만 했다. 예전 견진성사 때는 모든 신자가 잔치를 벌이므로 거나한 식사를 준비하고 술도 한잔 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19로 본당 내 식사가 금지되어 부득이하게 식사 대신 '일인 일닭'을 준비하기로 했다. 닭 200마리 튀김에 도전한다!


본당 마당에 무쇠솥을 걸고 닭을 직접 튀긴다. 초벌을 하고 한 시간 정도 기다려 다시 튀기면 세상 어떤 것보다 맛있는 옛날통닭, 곧 성당통닭이 탄생한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데 직접 손질하고 좋은 기름으로 튀긴 영계면 오죽하겠는가!



닭을 튀기는 팀이 새벽 5시부터 와서 견진성사 준비를 했다. 그 때문에 깨어 같이 커피와 아침을 먹고 오전 10시에 주교님을 맞이했다. 예쁜 여섯살 김단아 루시가 주교님께 꽃다발을 드리고, 곧 미사가 시작되었다. 서른 네분의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제자들에게 내리신 그 성령을 받았다. 주교님의 '성령의 인호'는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미사 후, 일인 일닭과 주교님의 묵주선물이 모든 신자들을 더욱 즐겁고 감사하게 했다. 


잠시 뒷정리를 하고, 본당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남은 성당통닭과 맥주 한잔을 마셨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좋은 시절, 가을날 느티나무 아래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오늘은 한국 103위 순교자 대축일이다. 나의 세례명인 하상바오로 성인의 축일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기쁨이다. 나는 한국의 모든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을 기리며 기쁜 마음으로 신자들의 견진성사를 바라보았다. 성령이 우리 군위성당에 늘 함께 하심을 체험하며 성령의 특은을 받은 이들이 자라나 더욱 멋있고 훌륭한 본당으로 성장할 것을 생각하니 참 좋았다. '오소서, 성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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